어느 작은 나라가 미국을 침공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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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나라가 미국을 침공한 까닭
  • 이민우 기자
  • 승인 2010.08.1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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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자 소설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 아메리카합중국. 그런 미국을 상대로 어느 조그마한 나라가 선전포고를 했다. 그들의 목적은 이기는 게 아니라 가능한 한 빨리 지는 것이란다. 우리나라의 의암댐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 바로 ‘그랜드 펜윅 공국’ 얘기다.

   
▲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 레너드 위벌리 / 뜨인돌 ⓒ 데일리경인
그랜드 펜윅 공국은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세계 최고의 와인을 생산 수출해 왔다. 그런 이 나라에 사상 최악의 위기가 닥쳤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인구가 4,000명에서 무려 6,000명으로 급증해 와인 수출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게 된 것.

그러자 의회는 와인에 물을 타 생산량을 늘리자는 ‘희석당’과 이에 반대하는 ‘반(反)희석당’으로 격렬히 대립한다.

급기야 어린 나이에 공국의 제위를 물려받은 글로리아나 12세 대공녀는 고심 끝에 “자기네와 전쟁을 해서 패전한 나라에 온갖 선물과 원조를 아끼지 않는 이상한 나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기로 결정한다.

미국을 침공한 뒤 재빨리 항복해 패전국이 됨으로써 막대한 구호물자를 받아 챙기자는 묘안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약소국의 전쟁 선포에 코웃음을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랜드 펜윅 원정부대는 중세 갑옷과 활로 무장한 채 낡은 범선에 올라타 뉴욕으로 향한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즈음 이미 눈치챘으리라. 그렇다. 그랜드 펜윅 공국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작가 래너드 위벌 리가 쓴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뜨인돌 출판사) 속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이다.

이 책은 1955년 출간 당시 ‘최고의 정치 풍자 소설’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한 1959년엔 ‘핑크 팬더’ 시리즈로 유명한 코미디 배우 피터 샐러스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놀랍고도 안타까운 것은 반세기도 전에 쓰인 이 소설에 담긴 상황은 지금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약소국가를 짓밟는 미국.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서 ‘평화의 파수꾼’을 자처한다. 한미관계에서는 아직도 굴욕 외교, 안보 문제가 망령처럼 우리를 괴롭힌다. 현실에서는 그 불합리와 맞서 이겨낸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다르다. 얼떨결에 그랜드 펜윅이 전쟁에 이기면서 강력한 핵무기를 포획하자, 힘의 관계는 단숨에 역전된다. 오만한 미국이 그 작은 나라에 벌벌 떨게 된 것이다. 그랜드 펜윅은 갑작스레 얻은 권력을 그야말로 세계평화에 온전히 쏟아낸다.

아직도 선의의 승리를 꿈꾼다는 면에서 이 소설은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선한 의지를 믿고 싶어하는 현대인에게 통쾌함을 선사하기에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기도 하다.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따끔하게 꼬집는, 특유의 통쾌함은 계속 이어진다. 군주가 얼떨결에 미국 증권계의 거물이 된다는 이야기로 자본주의를 비판한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월스트리트 공략기>, 1960년대 우주경쟁이 살벌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자국의 힘 과시에 골몰하는 강대국을 코믹하게 그려낸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 세계인을 석유에 의존하게 만들어 이익을 독식하는 이들을 풍자한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석유시장 쟁탈기>까지···.

엉뚱한 약소국 ‘펜윅’이 불러온 신선한 바람은 블로거들이 쏟아내는 리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그랜드 펜윅과 바티칸 시국 중 어느 나라가 더 작을까? 한 포털 사이트에 실제로 올라와 있는 질문이다. 바티칸 시국의 영토는 0.44제곱킬로미터, 그랜드 펜윅 공국은 40제곱킬로미터이기에 그랜드 펜윅이 훨씬 크다. 다만 그랜드 펜윅은 책으로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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