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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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승오 기자
  • 승인 2016.06.0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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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사는 집의 근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동네’의 뜻이다. 흔히 동네 약국, 동네 이발소, 동네 세탁소, 동네 호프집, 동네 빵집 등등으로 사용된다. 때론 직업 앞에 ‘동네’라는 단어를 붙여 동네 기자, 동네 변호사 등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때 경찰은 ‘동네 조폭’ 소탕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데, 참 요상스럽다. 동네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가 주는 친근감과 편안함보다는 도심에 비해 뭔가 부족하다는 전제가 깔린 ‘평가절하’가 그 단어의 이면에 숨어 있다. 동네 조폭도 매한가지다.

수많은 ‘아우’들을 거느린 막강한 조직을 갖추고 어마어마한 이권에 개입하는 ‘폼나는’ 폭력배가 아니라 동네 골목길에서 껌이나 씹으며 애들 코 묻은 돈이나 뺏는 ‘잔챙이’라는 폄훼가 깔려 있다. 오죽하면 국민 오빠, 국민 여동생, 국민 삼촌하며 ‘국민’이라는 단어를 ‘동네’의 대척점에 세웠을까? 이는 동네는 보잘것없고, 도심이나 국민은 위대하다는 오만에 기인한다.

물론 이런 세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스스로(?)를 당당히 ‘동네’로 규정하며 ‘국민’이나 ‘도심’과 맞짱 뜨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시흥시는 지난해 9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동네변호사’ 제도를 6월부터 전체 동으로 확대 운영한다고 한다.

이는 마을단위의 각종 분쟁에 대해 자문하고 법률서비스 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편리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자치단체가 나서 ‘동네’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 사례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모 공중파 방송의 드라마 ‘동네 변호사’도 궤를 같이한다. 제작진이 고뇌 끝에 정했을 드라마 제목의 의미를 정확히 꿰뚫을 재주는 없지만 짐작컨대 이런게 아닐까. "너 국민 변호사냐? 나 동네 변호사다. 근데 뭐?"

실제로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명예, 권력 등 모든 것을 손에 쥔 검사 OOO가 검찰 내 비리를 견디지 못하고 내부 고발자가 된 뒤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법을 지켜나가는 변호사가 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동네 변호사는 그들이 깔보는 동네 변호사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는 ‘동네’라는 명사의 이면에 숨어 있는 냉소를 걷어내자. 우선 기자부터 당당해져야겠다. 난 지역기자다. 아니, 동네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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