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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u Krishnamurti)
2009년 02월 08일 (일) 01:44:39 김광충 기자 kkc@newswin.kr
크리슈나무르티(1895-1986)

크리슈나무르티는 한 인간이 종교 전통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내적인 탐구만을 통해서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종교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영적인 가이드로서 커다란 영향을 끼쳐 왔다. 이미 국내에서도 그의 저서는 수십여 종이 번역되어 대중적으로 널리 읽혀 왔으며, 세계적으로도 달라이 라마, 간디, 버트란드 러셀, 올더스 헉슬리, 데이비드 봄, 알란 왓츠 등 저명한 종교가와 학자들이 그와 사상적으로 교류했거나 진리 탐구에 대한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었다.

그가 사망한 지 20여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의 생애나 사상에 대한 책과 논문들은 계속 출판되고 있다.

어린 시절 크리슈나무르티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자라난 여인인 라자 라다고팔 슬로스가 회고 형식으로 써내려간 책 [크리슈나무르티와의 숨겨진 생활(Lives in the Shadow with J. Krishnamurti)](2000)이라든가, 롤랑 버논이 크리슈나무르티와 신지학회의 관계를 세밀하게 분석한 [크리슈나무르티-메시아의 창조(Star in the East - Krishnamurti the invention of Messiah)(2001) 등이 대표적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어린 시절 _

크리슈나무르티는 1895년에 인도 브라민 가정에서 태어나 14살에 신지학회에 의해 발탁되기 전까지 힌두교적 풍습에 따라 생활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브라민 소년들처럼, 크리슈나무르티도 힌두교의 의례나 경전을 공부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출생 즈음에 몰아닥친 심한 기근과 열병으로 어린 시절 내내 건강이 좋지 않았다. 또한 그는 공부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지들에게 연필과 석판을 준 일이나 수업시간에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곤 한 일, 주의가 산만하여 교실 밖으로 쫓겨나서 어두워질 때까지 벌을 서고 있으면 동생 니티야가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 일화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어머니 산지밤마는 크리슈나무르티가 10살 때 돌아가셨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버지는 지방 세무서의 관리이긴 하였지만 식민지 인도의 경제적 상황은 좋지 않았다. 1909년에 크리슈나무르티와 동생 니티야가 신지학회에 발견되기 전까지 열 명의 형제들 중 다섯 명만이 질병과 기근 속에서 살아 남았다. 아버지 나라야니야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었던 신지학회에서 직업을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당시 인도에서는 신지학회가 기독교를 공격하고 불교와 힌두교를 옹호하였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았다. 나라야니야는 여러 번에 걸친 간청으로 겨우 신지학회에서 작은 일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인도 아디야르에 넓고 아름다운 사무소를 가지고 있었던 신지학회 근처에 다 쓰러져가는 조그만 집으로 이사하는 것도 허락 받았다.

렏비터(C.W.Leadbeater),

1909년 어느 더운 저녁 날, 신지학회의 아디야르 사무소가 있는 바닷가에서, 신지학회의 지도자였던 렏비터는 크리슈나무르티와 니티야 형제를 보았다. 둘 중 작은 아이는 신지학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다른 아이는 거의 주위 사람을 의식하지 못한 채 멍청하게 입을 반쯤 벌리고 공상에 잠겨 있었다. 렏비터는 이 공상에 잠긴 아이가 천상의 실체인 눈부신 빛, 즉 오라(aura)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크리슈나무르티에게서 여러 번의 재생을 통해 완벽한 발전을 이룩한, 이기심이 거의 없는 고대의 현명한 영혼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몇 주 동안 자신의 방갈로로 형제를 초대하여 규칙적으로 인터뷰를 했다. 형제는 어색하게, 무서운 영국 신사 앞에 서서 그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고는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렏비터는 크리슈나에게 그리스도의 영혼이 하강하였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크리슈나무르티는 성장할 때까지 렏비터에게서 그리스도, 즉 '세계의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된다. 아래에서는 신지학회에 대해 살펴보자.

신지학회 _

본래 신지학(Theosophy)은 연금술, 점성학과 같은 인류의 오랜 비의적 전통(esotericism)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고 근대적인 모습의 서양 사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후, 비의주의는 이제까지 오랫동안 인류가 연구해온 방향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는 인류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신지학과 달리 그 내용과 방향이 상당히 혼란스러운 것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헬레나 블라바츠키(
http://www.sobrenatural.org)

사람을 끄는 인품에 이국적 취향, 박식함으로써 주류종교의 권위에 도전한 영적 모험가 중의 한 사람인 헬레나 P. 블라바츠키(Helena Petrovsky Blavatsky)는 1875년 뉴욕에서 신지학회를 창립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비밀의 교리(secret doctrine)’을 발견했으며, 이것이 인류 역사의 새 시대를 여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831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블라바츠키는 인도와 라다크 등을 여행하였는데, 자신이 티벳의 한 외딴 동굴에서 스승들을 만났으며, 그들이 블라바츠키를 통해 모든 인류에게 지혜를 계시해 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스승들이 그녀에게 보냈다고 하는 편지들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녀는 사실상 신지학회의 일선에서 물러난다.

신지학회 엠블렘

블라바츠키의 동지였던 미국인 헨리 올코트가 사망한 후, 신지학회는 영국인인 애니 베산트를 회장으로 맞으면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애니 베산트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으나 영국 국교회 목사인 남편과 이혼하고 정치가이자 여성 운동가로서 성공하였다. 하지만 신지학회에 가입한 후에는 모든 세속적인 일을 그만두고 헌신적으로 신지학회의 일을 돌보게 된다. 베산트가 정신적으로 의지한 동지였던 렏비터 역시 한때 영국 국교회 목사였다.

* Roland Vernon, Star in the East - Krishnamurti The Invention of Messiah(N.Y.: Palgrave, 2001), pp. 3-30.
** Antoine Faivre, Mircea Eliade ed.,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vol. 5(N.Y.: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1987), pp. 156-162

렏비터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로 남아있다. 일부 사람들은 크리슈나무르티의 교육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인 그를 존중하지만, 다른 편의 사람들은 성도착자나 거짓말쟁이라고 그를 비난한다. 실제로 1982년에 한 전기 작가의 폭로를 통해 그 이전까지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인도 아드야르 소재 신지학회 본부(
http://www.ts-adyar.org)





신지학회는 초기에 오컬티스트(occulists), 유대카발라 신비주의자들, 골동품 수집가들, 이집트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결집된 것이었다. 하지만 점차로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다양한 신비주의를 혼합하기 시작하였다. 신지학회는 모세의 하나님인 인격신을 강하게 부정한다. 카르마의 원리를 인정하며, 인간, 우주를 모두 일곱 차원으로 설명한다.

신지학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지학회의 많은 회원들이 영국의 종교적 비국교도들이었음에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영국의 국교도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를 거부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동양 종교와 각종 신비주의들이 결합된 신지학회에 회원으로 가입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지학회 회원들이 서양 세계의 오랜 종교적 신념인 그리스도나 하느님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해석되는 그리스도를 원했다. 그래서 신지학회가 내세우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새로운 개념의 그리스도인 ‘세계의 교사’라는 관념에 흥미를 가졌던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이러한 당시 서양인들의 관심을 집약한 하나의 아이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지학회를 거부하다




애니 베산트와 어린 크리슈나무르티 (http://bernie.cncfamily.com)  

렏비터는 아직 아무 것도 씌어 있지 않은 텅 빈 종이와 같았던 어린 크리슈나무르티의 머리에 신지학의 기본 교리들을 채워 넣었다. 그가 크리슈나무르티와 동생 니티야를 교육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소년들이 블라바츠키의 스승인 쿠투미(Kuthumi)를 만나 입문식을 받는 일이었다. 물론 입문식은 크리슈나무르티의 육체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아스트랄체(astral body:본래 힌두교의 개념이었으나, 신지학회에서 인간을 이루는 본질 가운데 하나로 재해석한 영적 실체)로 받는 것이었다.

블라바츠키를 뒤이어 신지학회의 회장이 된 애니 베산트도 두 아이들을 똑같은 강도로 영국화하기로 결심했다. 세계의 교사는 ‘코스모폴리탄’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수업은 모두 영어로 이루어졌고, 서구식 식사문화와 잠자리, 유럽식 의상과 헤어스타일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크리슈나무르티는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고 평범한 삶을 동경하였다. 그는 친구였던 에밀리 부인에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왜 그들은 하필이면 나를 선택했을까요?” 에밀리 부인은 크리슈나무르티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활발했던 성격의 동생 니티야는 사업에 소질이 있었으나 신지학회의 후원자들은 그가 세계의 교사 후보자인 형에게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니티야는 실망하면서 곧 건강을 해치게 되었고 얼마 안 있어 결핵으로 숨지게 된다.

* Roland Vernon, op. cit. pp. 7-38
** ibid., p.50-58
*** 메리 루틴스 지음, 최종옥 옮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서울: 청하, 1986), 118쪽
  
1926년의 크리슈나무르티(
http://bernie.cncfamily.com)  
크리슈나무르티는 성장하면서 신지학회를 내부에서부터 개혁하려고 애썼다. 그는 신지학회의 ‘제자의 길’을 따르라는 강의를 하지 않고, 점차로 의심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라든가,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강의를 함으로써 신실한 신지학회 회원들을 혼란시켰다. 신지학회 회원들은 점차 크리슈나무르티에게서 배신감을 느끼고 반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애니 베산트는 자신이 아들처럼 여겼던 크리슈나무르티를 끝까지 지켜주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신지학회를 지키지도 못하였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애니 베산트가 30여년에 걸쳐 만들어 온 조직과 메시아의 역할을 거절하고 있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14세 때부터 신지학회로부터 영적인 교육을 받았으나, 성장한 후에 신지학회의 신비주의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가 렏비터가 가르친 영적 세계와 영적 스승들에 대해 거부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신지학회를 탈퇴한 후 펼친 사상과 신지학회의 사상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사상은 선불교나 힌두교의 샹카라 철학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는 진리를 어떠한 전통이나 문화의 매개도 없이 마음으로 단번에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주와 인간에게 몇 차원이 있다든가, 우주 영(Universal soul)이 존재한다든가 하는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신지학회의 사상은 주로 후자에 가깝다. ‘영혼의 상승, 입문식, 우주와 지구의 차원, 스승들’은 모두 신지학회 사상의 주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별의 교단 해체 연설에서 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는 성장하면서 자신과 신지학회 사이의 이러한 사상적 차이를 확실히 느끼게 되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신지학회의 사상을 지키려는 전통적 신지학자들과 자신의 견해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점차 커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결국 이러한 신지학회와의 갈등과 조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지, 나아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상의 실현이라는 복합적인 문제를 신지학회 탈퇴 선언을 통해 해결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29년 8월 3일 아침, 크리슈나무르티는 네덜란드 라디오를 통해서 자신을 추종하던 사람들의 모임인 <별의 교단>을 해체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는 ‘진리는 길 없는 곳’이라는 연설을 하면서, ‘진리를 구할 목적으로 조직이 구성된다면 그것은 목발이 되고 붕대가 되어 진리를 구하려는 사람을 불구로 만들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나는 추종자들을 원치 않으며 인간을 모든 새장, 공포, 종교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1930년에 공식적으로 신지학회에서 탈퇴했고, 그해 7월부터 스스로 새로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개강연을 하기 시작하였다. 
* Roland Vernon, op. cit. pp.98 - 176
** 메리 루틴스, 위 책, 283-293쪽

크리슈나무르티의 사상 _

의미있고도 중요한 물음은 마음이 과연 두려움으로부터, 모든 작고 사소한 이기적 투쟁으로부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탐구이다. 그리고 마음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진실하고 시간이 개입하지도 않으면서 측량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를 스스로 질문할 수 있을까? 이것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 스스로에게 하나의 빛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무리 해도 다른 사람의 빛을 가질 수 없으며, 다른 빛에 의해 조명될 수도 없다.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조화’, [내 안의 이 빛(This light in on-eself)](Boston: Shambala), 1999)
사실 크리슈나무르티의 모든 주장은 이 한 단락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빛이 되라고 주장한다. 내 안의 빛은 나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으며, 다른 누구의 빛도 나의 것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종교나 사상 등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빛’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라고 주문한다.




(http://www.kfoundation.org)  크리슈나무르티가 발견한 ‘내 안의 빛’은 보통 우리가 이야기하는 ‘궁극적 진리(truth)'와 거의 동의어로 쓰일 수 있다. 그는 이 빛을 하느님(God), 종교(religion), 기반(the ground), ’거대한 무엇‘ 등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존재하는 것’과 ‘되어야 할 것’ 사이의 투쟁을 ‘관찰(observation)'하면서, ’의식(awareness)'과 ‘주의 깊음(attention)'의 상태에 이르게 되고, 궁극적으로 ‘명상(meditation)'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형이상학적으로 진리를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진리가 다가오게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인간성이 오래 전에 잘못된 방향으로 전환하였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한마디로, 그는 인간이 ‘무엇인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술이나 언어를 배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논외로 한다. 그는 오직 심리적인 문제만을 다룬다. 인간이 내적으로 현재 자신의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고, 자꾸만 시간적으로 미래의 어떤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관찰’하라고 주문한다. 관찰을 통해 마음속에 있는 과거-현재-미래의 ‘시간(time)'을 종식시켜버리라고 말한다. 시간이 끝나버리면 무엇이 남는가? 인간에게는 오직 순간순간의 현재만 남는다. 이미 눈치 채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선불교의 돈오돈수(頓悟頓修)와 상당히 유사하다. 즉 어떠한 수행의 과정도 없이 곧바로 시간을 끝내버리고 과거를 잘라버리는 것. 이 때 명상이 일어나는 것이고, 진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가 남긴 각종 일기와 편지들을 살펴보면, 그는 상당한 정도로 신비 체험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상은 단순히 사상으로서만 전개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진리와 직접 만나면서 체험한 것들을 풀어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신지학회를 떠나면서 신비주의를 버린 것이 아니라, 그 자신만이 추구하고 체험한 새로운 신비주의의 길을 떠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크리슈나무르티, 데이비드 봄, 성장현 역,『시간의 종말』(서울: 고려원미디어, 1994), 14쪽


크리슈나무르티가 우리에게 남긴 것 _

크리슈나무르티의 사상은 현대인들에게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개인주의화되고 전통적 종교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빛을 발견하고 진리와 만나라는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을 통해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인간이 수천 년 동안 형성해 온 전통과 문화를 통하지 않고서도 즉각적으로 관찰 명상을 통해서 진리,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인간은 어떠한 전통이나 문화의 베일도 거치지 않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같은 전통들은 모두 다 헛된 것이며, 그 모든 것들을 다 벗어버려야만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종교 철학적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존 힉(John Hick)이나 스티븐 캇츠(Steven Katz)와 같은 학자들이 논의하는 바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문화적 전통적 조건 아래에서 진리를 경험한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문화와 전통을 학습하며 자라난다. 전통 안에서 진리도 경험한다. 불교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은 불교적 진리를 만나며,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은 그리스도교적 진리를 만난다는 것이다.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난 신비주의자들을 분석한 결과,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은 카발라 경전에 나타난 신비주의를 체험하며, 힌두교 신비주의자들은 우파니샤드와 베다에 나타난 신비주의를 체험한다고 한다. *

그렇다면 크리슈나무르티는 어떠한가? 그는 14세에 신지학회에 의해 발탁되기 전까지 힌두교적 전통에서 자라났다. 힌두교 전통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육도 받았다. 주목할만한 것은 그가 말년에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과 나눈 대화에서 불교나 힌두교의 신비주의적 체험을 옹호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모든 종교적 체험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불교도 힌두교도 그리스도교도 모두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가 자신이 만난 궁극적 진리가 불교나 힌두교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모든 전통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그의 주장과 모순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그의 사상이 갖고 있는 미묘한 한계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리슈나무르티 자신도 불교와 힌두교라는 인도 전통의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서, 불교와 힌두교에 유사한 신비 체험을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존 힉, 김희수 옮김, 『종교철학』(서울: 동문선, 2000), 220쪽
Steven T. Katz, "The Conservative Character of Mystical Experience", Mysticism and Religious Traditions(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3), pp.3-60
** Krishnamurti,Bohm, The Ending of Time(London: Victor Golantz, 1985), p. 31.


크리슈나무르티와 데이빗 봄 (www.prahlad.org)  

모든 전통들을 거부하고, 스스로 관찰하는 것만이 진리를 만나는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 인류는 종교 전통들 안에서 전쟁, 살인, 비도덕적 행위 등으로 수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러 훌륭한 신비주의자, 종교가와 경전을 생산해 왔다. 전통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명확히 분별할 줄 아는 지성을 갖고, 한편으로는 종교 전통들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새롭게 창조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는 개인화, 자본주의화의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이 스스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봄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데이비드 봄: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적인 의미를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을 겁니다.

크리슈나무르티: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은 이것을 넘어서 삶에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명상을 시도해왔고, 모든 형태의 자기 학대, 고립, 수행자, 산야신이 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 스스로를 완전히 속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데이비드 봄: 네. 그리고 사실 그것이 과학자들이 그 모두를 부정해 온 이유입니다. 종교적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그럴 듯 하지 않거든요. *

종교가 의미를 잃어버린 현대사회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삶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만일 종교라는 인간적 현상의 목적이 궁극적 진리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주는 것이라면, 크리슈나무르티 역시 종교가 지닌 목적과 동일한 목적을 추구해 온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종교 전통들을 부인해 왔지만 아마도 그것은 그가 교육받은 현대인으로서 종교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감에서 비롯된 것일 뿐, 그의 진정한 목적은 사랑이고 진리라는 점에서 종교 전통들의 목적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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