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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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 김광충 기자
  • 승인 2008.07.0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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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200여명은 3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국미사를 가졌다.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고 고통받는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사제단 측은 밝혔다.

서울 도심에서 이처럼 대규모 미사를 갖기는 지난 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처음이다. 사제단이 촛불집회에 합류하면서 전세가 역전되는 분위기다.  

미사 집전은 예정보다 1시간 가량 늦게 시작됐다. 미사를 마친 정의구현사제단은 남대문, 명동 다시 시청앞 광장을 1시간 가량 돌며, 거리행진을 펼쳤고, 시민들은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인파는 늘어 10만, 12만여명으로 점점 불어났다.

사제단은 시민들을 향해 "촛불을 지키는 힘은 비폭력이다. 오늘 비폭력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 만약 깨지면 촛불은 영영 꺼지는 것이다. 다시는 시청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며 비폭력을 강조했다.
밤 10시쯤 돌아왔을 땐 사제단은 내일을 위해 귀가할 것을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사제단은 오늘도 오후 6시 30분 시국미사를 드리고, 단식농성에 들어갈 계획이다.

당초 경찰은 사제단이 주도하는 미사는 허용하되 시가지 행진을 막을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계획은 무산됐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시국 선언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마구 저지르는 오늘의 폭력상과 거짓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분노합니다.

주권재민을 힘껏 외치는 시민들의 고뇌를 마음에 품고 오로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하여

사제들이 오늘까지 이렇다 할 의견표명과 행동 없이 침묵 중에 지냈으나 이제 그런 절제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국민이 그토록 간절하게 호소했건만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자진 굴복하여 문제의 쇠고기와 위험한 부속물 수입을 전면 허용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들끓는 국민여론을 제압하기 위하여 몽둥이와 방패로 시민들을 패고 내려찍으며 무참히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로써 촛불에 담겼던 간곡한 뜻은 짓밟혔고 우리는 대통령과 정부의 존립근거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교만과 무지를 탄식하면서

그들의 병든 양심을 교회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꾸짖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사제의 양심에 따라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먼저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광우병의 위험성을 무섭게 따지고 들다가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의 절대 안전을 강변하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입니다.

정론직필의 본분을 버리고 이해득실에 따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정책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국민을 속이고 있는 현실은 더욱 큰 불행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순진하다고 착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의 궤적을 잘 알면서도 혹시 경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지난 대선의 결과를 빚어낸 것뿐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금번 쇠고기 협상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도 울분을 터뜨릴 일이지만,

높이 받들고 깊이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저 미국에 충성하려드는 맹목적 사대주의도 딱한 일이거니와 오늘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재앙은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값싸게 여기는 정부의 경박한 물신숭배에서 비롯했음을 지적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값싸고 질 좋은 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생 공락하는 드높은 자존감입니다.

국제적 망신을 일으킨 졸속협상이나마 정부의 주장대로 이에 복종하는 것이 한미 FTA 체결 조건에 유리하고,

그래서 자유무역이 혹시 경제지수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억측이 설령 옳다고 가정해도

그 결과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양극화 현상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게 교회의 판단입니다.

결국 정부는 불행한 미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공권력을 악용하여 국민의 통곡과 신음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요한 1,5)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까지 촛불을 지켰던 민심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우리 사제들은 청정한 수도자들과 전국의 모든 교우들과 함께 무장경찰들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드리고자 합니다.

정부는 원천봉쇄와 강경진압 그리고 오늘 아침에 벌어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압수수색과 체포 따위로 진실을 어둠에 가두려고 하겠지만

이런 모진 마음 때문에 국민이 받은 상처와 모욕은 더욱 깊어만 갈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호소합니다.  

1. 국민은 너그럽습니다. 대통령은 우선 쇠고기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겸손하게 사죄를 청하는 뜻으로 장관고시를 폐하고 쇠고기 전면재협상을 선언하길 바랍니다. .  

2. 먼저 들으셔야 합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대통령은 먼저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진실을 깊이 헤아린 다음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길 바랍니다.  

3. 국민은 현명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 건강의 안전성과 이를 보증할 검역주권입니다.

일부 언론이 쇠고기 문제를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의 이념갈등으로 몰아감으로써 핵심을 왜곡하지 말아야합니다.  

4. 과잉 폭력진압을 지시한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시위 중 연행된 사람들과 대책회의 구속자들을 전원 석방하십시오.

그리하여 존엄을 바라는 국민의 상처를 씻어주길 바랍니다.  

5. 국민 여러분에게도 호소합니다. 촛불은 평화의 상징이며 기도의 무기이며 비폭력의 꽃입니다.

우리가 비폭력의 정신에 철저해야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신앙인에게 호소합니다.

촛불은 안으로는 내면의 욕심을 불태우고, 밖으로는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수단입니다.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여 지친 세상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빛이 됩시다.
 

2008년 6월 3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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