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국민이 지켜주는데 왜 진실보도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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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국민이 지켜주는데 왜 진실보도 못하나
  • 김광충 기자
  • 승인 2008.06.2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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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여의도 KBS 앞에서 벌어진 이른바 ‘보수단체’ 회원들의 시민 폭행 사건을 다룬 방송 보도가 참으로 실망스럽다. 특히 KBS의 ‘몸사리기’ 보도 태도는 KBS 보도국이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시도’에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23일 5시 50분경 KBS 앞에서 ‘정연주 사장 퇴진촉구’, ‘국정 흔들기 중단 촉구 국민대행진’ 집회를 열던 뉴라이트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회원 수 십명이 ‘공영방송 지키기’ 1인 시위를 벌이던 여성을 피켓과 각목 등으로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여성이 폭행당하는 것을 본 다른 시민이 말리자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 시민까지 폭행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시민들이 폭력의 가해자를 현장에서 붙잡아 넘겼음에도 그를 검거하지 않아 현장의 시민들을 자극했다. 한편, ‘보수단체’가 남겨두고 간 트럭에서는 각목과 쇠파이프, 톱 등이 발견돼 충격을 더했다.

폭행 사건 당일, 방송3사 메인뉴스에 관련 보도 없어
이처럼 심각한 사건을 방송3사는 당일(23일) 저녁종합뉴스에서 보도하지 않았다. MBC와 KBS는 심야뉴스에서도 다루지 않았으며, SBS ‘나이트라인’의 <폭력 논란 증폭> 마지막 부분에서 “KBS 앞에서 각각 집회를 하던 보수와 진보단체 회원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져 박 모씨 등 2명이 다쳤습니다. 경찰은 충돌경위와 폭행가담자를 조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몸싸움’으로 짧게 다뤘을 뿐이다.

KBS와 MBC는 24일 아침뉴스에서부터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그러나 KBS의 보도 내용은 납득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KBS <오늘 국민대토론회>는 “시위대가 KBS 앞으로 장소를 옮겨 밤샘 시위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보수 단체와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라고 앵커멘트한 뒤, “KBS 앞에서 촛불 시위대와 보수 단체들이 충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대 대부분은 KBS로 방향을 잡았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오후에 일인시위를 하던 여성이 ‘보수단체’에게 폭행당한 데 대해서는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채, 심야 집회현장의 충돌만을 보도한 것이다.

또 KBS는 “촛불시위대가 시위용품으로 가득 찬 보수단체 측의 차량을 폭력 행위의 증거라며 제출하려 했지만, 경찰이 위법성을 이유로 거부하면서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언제부터 각목과 쇠파이프를 “시위용품”이 라고 표현했는지 궁금하다.

SBS 보도 역시 문제가 있었다. SBS <여의도서 충돌>에서는 “보수단체 회원들은 오후 6시 반쯤 KBS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50살 박 모씨를 폭행했고, 미리 준비한 각목과 쇠파이프 등이 발견되면서 결국 양측의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경찰은 충돌을 막기 위해 과격한 행동을 벌인 양측 관계자 1명씩을 연행했습니다”라고 ‘보수단체’ 회원들의 폭행 사실을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보수단체’ 회원들의 폭행은 언급에 그친 반면 이들의 폭행과 경찰의 방관에 분노한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폭력을 더욱 부각하고, 양측 모두 ‘폭력 충돌’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다뤘다는 점에서 문제였다.

그나마 방송3사 중에서 이번 사건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은 MBC였다. MBC <충돌…1명 부상>은 앵커가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여성을 보수단체 회원들이 폭행하면서 밤사이 촛불시위대와 보수단체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고 전한 뒤, 폭행당한 여성이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과 인터뷰를 전했다.

또 “현장에서 각목과 쇠파이프 등이 가득 실린 보수단체의 화물차가 발견되자, 시위대들은 폭력사용을 사전에 계획한 증거라고 주장하며 경찰서를 항의 방문해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다른 방송 보도에 비해 ‘보수단체’의 폭행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방적인 폭력의 피해자를 ‘충돌’로 인한 부상자로 표현한 것은 아쉽다.

KBS, 폭행 사실을 ‘주장’, ‘공방’으로 다뤄
24일 저녁종합뉴스에서는 방송3사 모두 관련내용을 다뤘는데, 역시 ‘보수-진보’의 대립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KBS는 ‘보수단체’들의 폭행 사실을 주장으로 치부하고 ‘공방’으로 다뤄 MBC·SBS 보다 ‘몸을 사리는’듯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KBS <폭행공방>에서 앵커는 “어제 KBS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여성이 보수단체 회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는데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촛불시위대에 맞았다고 주장하고 나서 폭행공방이 가열되고 있”다고 멘트했다. 기자 리포트에서도 폭행을 ‘주장’으로 언급했다.

또 “이후 폭행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금세 퍼지며 서울 광장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시위대 수백여 명이 KBS로 몰려와 남아있던 보수단체 회원 10여명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을 폭행한 가해자로 지목된 박 모 목사는 도리어 자신이 촛불시위대에 폭행을 당해 눈을 다쳤다고 주장했습니다”라며 그의 주장을 담았다.
적어도 MBC와 SBS는 ‘보수단체’들이 일인시위를 하고 있던 여성을 일방적으로 폭행했다는 사실 자체를 ‘주장’으로 보도하지는 않았다. MBC <충돌조사>에서는 일인 시위 여성의 폭행 사실을 전달하고 경찰이 ‘보수단체’의 폭행을 방관했다는 국민대책회의 관계자의 인터뷰를 전했다.

SBS <집단폭행…충돌> 역시 “어제(23일) 저녁 KBS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시민이 보수단체 회원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가세해 양측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라고 충돌이 벌어진 전후 관계를 분명히 했다.

기자도 “1인 시위를 하던 49살 박 모씨가 폭행을 당했습니다. 보수단체 회원 2백여 명이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진 뒤 바로 옆에서 공영방송 수호 피켓을 들고 시위 중이던 박씨에게 시비를 걸다 폭행까지 한 것입니다”라고 보도했다.

그동안 KBS를 비롯한 방송 3사는 촛불집회 보도에서 인터넷 매체에 비해 보도량이 적고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국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들을 보도해왔다는 점에서 ‘촛불집회 소극보도’는 너그럽게 평가받은 면이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자발적인 ‘공영방송 지키기’를 다룬 방송3사의 보도는 너무도 소홀하다. ‘진보-보수’의 대립으로 사태를 접근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지금 공영방송과 국민들의 ‘공영방송 지키기’에 색깔론을 펴며 가스통으로 위협하고 각목으로 시민을 폭행하는 집단을 과연 ‘보수’라고 할 수 있는가? 또 권력의 공영방송 장악을 막겠다는 국민들을 ‘진보’라는 이념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방송들이 지극히 관행적이고 편의적으로 사용하는 ‘진보-보수’의 틀은 상식과 비상식,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아울러 우리는 ‘보수단체’의 시민 폭행을 다룬 KBS의 보도를 접하며 KBS 보도국에 이렇게 묻고 싶다. 국민들이 KBS를 지키겠다고 나섰는데 무엇이 두려워 이토록 몸을 사리는 것인가? 이명박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이른바 ‘보수단체’들의 눈치를 보는 것인가?

적어도 KBS를 지키겠다고 나섰다가 폭행을 당한 시민들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보수단체’들의 폭행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비판하라. 국민이 KBS를 지켜보고 있다.


2008년 6월 25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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