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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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
  • 우승오 기자
  • 승인 2012.04.1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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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이란 본디 계약서상의 계약당사자들을 단순히 지칭하는 용어였다. 하지만 그 의미가 확대되면서 ‘갑’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계약자를, ‘을’은 지위가 낮은 계약자를 뜻하는 관용어로 쓰이고 있다. 나아가 강자와 약자를 칭할 때나 상하관계나 주종관계를 일컬을 때도 ‘갑·을’이라는 단어는 등장한다.

세상 살다보면 누구나 때로는 ‘갑’의 위치에 서기도 하고, 때로는 ‘을’의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갑’에게 흡씬 당한 뒤 허공에 대고 ‘두고보자’고 얘기하는 것은 달리말하면 언젠가 갑의 위치가 되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양자 관계에서 상대방의 생살여탈권을 쥔 강자가 갑이라면, 살기 위해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약자는 을이다. 싫든좋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그렇고,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가 그렇고,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가 그렇고,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가 그렇다. 오죽하면 부부관계에서도 엄연히 갑과 을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겠는가.
때로는 ‘을’과 갑을 관계를 맺어야 하는 한없이 처량한 ‘병’도 나타난다. 대기업을 기준으로 1차 협력업체가 을이라면 2·3차 협력업체는 병에 해당된다.
그런데 한가지 특수한 갑을관계가 존재한다. 이 관계는 흔히 선거를 기점으로 역전되기 일쑤다. 다름아닌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관계다. 선거 때만 되면 머슴입네 일꾼입네 하면서 철저하게 ‘을’의 자세로 유권자들을 ‘갑’으로 떠받들다가 당선이라도 될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가 돌변하는 이들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2주간의 선거운동 기간이 끝나고 오늘 제19대 총선거가 치러진다. 일시적으로 을로 위장한 후보자들은 철저히 솎아내자. 우리가 원하는 건 절대권력과 부정부패 앞에서는 당당한 ‘갑’이 되고 유권자들 앞에서는 철저히 ‘을’이 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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