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경인 자유기고가 지천] 제천을 출발해 충주, 청주를 지나 조치원으로 이어지는 충북선은 1921년 조치원-청주 구간이 처음 개통되었다. 충북선을 만든 이유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떠돌지만 일제강점기에 ‘농수산물 수탈용’이 거의 정설인 듯 하다. 결국 일본인들은 그들이 주장하던 ‘조선 오지의 산업개발’은 허울 뿐이고 내륙지방에서 생산되는 쌀, 벼, 연초, 석재, 석탄 등을 옮기기 위한 교통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물론 특산물을 가져만 갔던 것은 아니다. 당시 내륙지방으로 운송이 쉽지 않았던 소금이나 공산품등을 만주선과 경인선을 거쳐 청주, 청안(지금의 증평)에 실어 나르기도 했다.
▲ 충북선 공전역 가는길. 왼쪽으로 자영양당이 보인다. |
그러나 충북선은 중부내륙지역의 경제적 성장과 문화발전에 크게 도움을 주진 못했다. 해방 이전에는 일본인들의 유입경로가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중앙선과 경부선을 잇는 단순한 산업철도의 기능이 전부였다.
조치원에서 제천까지 이어지는 충북선에는 18개의 역이 있다. 그중 가장 한가로운 역을 꼽으라면 삼탄역과 공전역이다. 물론 다른 역들도 산업화가 진행되던 예전과 달리 한가하기는 매 마찬가지다.
한참을 가면서도 “도대체 역이 어디 있다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한적한 시골풍경에 “과연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 양쪽으로 누렇게 고개 숙인 벼들이 가을들판에 아름답게 펼쳐졌다. 앉은뱅이 담벼락엔 가을볕에 익은 호박이 걸려있고 지금은 쉽사리 볼 수 없는 자주색 함석지붕들도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이곳 공전리에서 제일 큰 건물은 공전초등학교와 예배당이다. 뾰족지붕에 걸쳐진 십자가보다 더 높은 건물은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마을을 지나 철길과 마주달리는 농로에 접어들자 저쪽 어딘가에 역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철길 건널목. 그 우측에는 시골답지 않게 제법 잘 지어놓은 자영양당이 보인다. 자영양당은 조선후기 성리학자인 성재 유중교(1821∼1893)가 조선 고종 26년(1889)에 자양서사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다. 고종 32년(1895년)에는 의병장인 의암 유인석이 8도유림을 모아 비밀회의를 하던 곳으로 1906년에 이소응이 주도하여 화서학파에서 존중하는 선현들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자양영당’을 창건했다. 여기에 주자, 송시열, 이항로, 유중교의 영정을 모시고 후에 유인석, 이직신의 영정을 추봉하여 춘추로 제향하고 있으며 성재, 의암이 살던 옛 집도 바로 옆에 있다.예전의 안전요원인 간수(건널목을 지키는 사람)가 없어 아쉬웠지만 자동화된 간이 건널목에 경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어대고 차단기가 서서히 내려 왔다. 무궁화호 열차였다.
우리나라에는 김천, 가은선과 전라선 등 동서로 횡단하는 철도가 몇 있지만 충북선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던 철도는 없었다.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도 없었고 내륙지방에는 남북으로 내리뻗은 백두대간이 동서횡단도로를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비둘기호와 통일호를 거친 지금의 충북선 열차는 무궁화호로 전면 교체되어 운행하고 있다. 하루에 8회를 왕복하는 무궁화호는 풋풋한 시골냄새를 실어 나른다. 제천장날을 찾고 증평 곡물장도 이 열차를 타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충북선은 사람만 나르는 것이 아니다. 단양, 제천 등지에서 시멘트와 석탄 등 많은 광물들을 싣고 달렸다. 지금도 여객보다는 각종 화물 이동이 주된 임무중 하나다. 여객열차보다 훨씬 많은 화물열차 운행편성이 이를 증명해준다.
개울을 따라 내려가는 길 맞은편 산 아래는 저녁 실루엣이 길게 늘어졌다. 지금은 해거름 의 아름다운 풍경을 쉽게 볼 수 없지만 유년시절엔 동구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 골목길을 지나야 겨우 보이는 공전역. 마당에 놀던 강아지가 낮선 사람을 보자 쫒아나와 반긴다. |
얼마를 걸었을까. 제천천 뚝방 끝에 다다르자 검은 골타르를 칠한 함석으로 만든 방앗간이 보이고 마을로 들어가는 곧게 뻗은 길이 있다. 오던 길을 따라 더 내려가면 영화 박하사탕이 만들어진 철다리가 나온다는 이정표도 눈에 들어 왔다. 그 우측이 역 입구다. 안내표지판은 수식어 한줄 없이 화살표와 ‘공전역’이 전부. 길 양쪽에는 누런 벼들이 넘실거리고 승용차 한대가 겨우 지날 법한 좁다란 길 따라 내려가면 내가 찾던 역이다. 깎아지른 뒷산이 버티듯 서있고 미루나무가 병풍처럼 에워싼 곳.
필자를 바라보는 역무원의 표정에서 이곳을 찾아온 내가 낮선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한 몇몇 간이역보다 더 가보고 싶은 곳. 공전역의 누런 황금들판의 가을 녘 풍경은 한 폭의 풍경화로 다가왔다. 그곳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꼭 한번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