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유산 '철원 노동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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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 '철원 노동당사'
  • 자유기고가 지천
  • 승인 2007.09.2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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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빛나...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철원노동당사'

[데일리경인 자유기고가 지천] 자연현상이 변화여 온 자취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을 기록한 것을 역사(歷史)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의 역사가 있었고 고려시대 역시 고려의 역사가 있었다. 기록되어진 역사는 소급 적용해 날조할 수도 없고 물리적인 힘을 가해 없앤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서울 한복판의 조선총독부(옛 중앙청)를 헐었지만 역사에 기록된 일제강점기는 바뀌지 않듯이 말이다.

남한의 최북단이고 오대쌀로 유명한 철원에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 하나있다. 다름 아닌 ‘북한 노동당사’다. 연건평 580평 규모에 3층으로 지어진 노동당사는 남북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축물이다. 1946년 초에 착공한 이 건물은 벽돌만 쌓아 올린 기둥에 철근콘크리트 슬래브를 얹어 놓은 형식으로 지어졌다. 당시 남한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소비에트(소련)공법이다. 

정문 우측(네모칸)은 남침용 땅굴입구
이 건물은 건축 당시 리(里)단위로 할당한 백미 200가마를 비롯해 주민과 장비를 동원, 착공한지 1년 만에 완공 되었다. 착취한 자금과 인력으로 지어진 셈이다. 이후 1947년 초부터 북한의 중앙당으로부터 하달되는 대남 극비사업과 철원을 축으로 인근의 김화, 포천, 연천 등 지역주민의 동향사찰은 물론, 각종 공작을 주도한 본거지로 활용하며 중부지역의 대남선동을 관장했다.

남한 침략의 전초기지였던 이곳에서는 취조 및 구금, 고문 등을 자행하며 한번 끌려 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초죽음이 되어 나오는 곳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의 노동당사는 초라하고 볼품없이 변해 버렸다. 뼈대만 앙상한 골조에서 세월의 흐름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을 뿐 쓰러질 듯 힘겹게 버티고 서있다.

민통선에 하나뿐인 이 건물은‘국민의정부’에서 전쟁의 참화를 보여주는‘중요 근대건축 문화재(제22호)’로 등록, 관리하면서 안보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 이어 현‘참여정부’는 건물의 붕괴를 막고 역사적 유물로 간직하기 위해 보존 작업에 온갖 정성을 쏟아 붓고 있다. 지난해 보존처리가 완료된‘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유명한 비무장지대의 마지막 남북열차와 함께 한국전쟁의 상징물로 남기기 위해서란다. 이렇듯 기록된 역사는 옳고 그름을 떠나 후세에 남겨 줘야하는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유산들이다.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있는 건물
김영삼 정부인 '문민정부'에서 조선총독부(옛 중앙청) 를 철거했다. 일제치하는 우리민족의 수치요 치욕의 시기였기에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철거해도 변할 것이 없다면 격변기의 산물로 남겨놓고 역사의 소중함을 고취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굳이 대통령이 철거를 원한다면 그 당위성을 국민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공감대를 이끌어 낸 후에 철거나 이전을 논했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동족상잔의 주체들이 만들어놓은 노동당사를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면 말이다.

정권이 교체할 때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역사를 세우고 허물기를 반복한다면 이 땅에 남아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원칙 없는 정책으로 역사를 바로세울 요량이라면 서울역사(驛舍)는 물론 전국 각지에 널려있는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을 성대한 이벤트와 함께 철거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전광석화처럼 철거된 총독부 건물은 역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통수권자들의 빗나간 역사관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적잖이 씁쓸하다.

철원 '노동당사'나 비무장지대의 '마지막 남북 열차'처럼 요란스럽게 보존하지 않더라도 역사적 건축물을 철거할 땐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으면 하는 바램 이 밤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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