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에 도사린 거대한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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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에 도사린 거대한 괴물
  •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위원장
  • 승인 2011.09.20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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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경찰서 유치장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서귀포경찰서는 지난 1일 나를 포함한 9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이 중 4명을 구속해놓은 상태다.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하고 경찰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다. 현재 정부당국과 해군은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을 철조망 펜스와 경찰병력으로 봉쇄중이다. 이로써 400여 년 동안 이 마을 주민들의 삶의 배경이 되어왔던 구럼비의 바다는 처음으로 주민과 마을로부터 단절되었다.

대검찰청은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이른바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체포 작전과 공권력을 통한 강제진압에 나서고 있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강정마을이 제주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된 지난 2007년 5월 이래, 주민들과 제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단 한 차례도 불법적인 집회나 시위 등을 계획해 본 적도, 실행해 본 적도 없다. 오직 해군기지 사업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를 바로잡을 합리적 해결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해왔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여론은, 기지 유치결정이 이뤄진 2007년 5월을 기점으로 더욱 확대되어왔다.

이는 당시 결정의 부당성과 해군기지 사업 추진이 정당성을 결여되어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2007년 이후 도내 언론사들에 의한 매시기별 여론조사 결과는 최소한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찬반을 넘어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음을 공히 지적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결과는 해군기지 건설계획 자체의 폐기 여론도 급격히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들어, 구럼비 해안의 아름다움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해군기지 건설문제가 국가적 사안으로까지 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올레7코스를 찾는 탐방객들의 구전효과와 생명평화결사와 같은 시민단체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의 비폭력저항에 대한 신념과 노력, 시간을 견디는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반대를 앞세운 무리한 주장과 폭력적 방식의 저항으로 임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이런 점에서 당국이 ‘폭력시위’, ‘공권력 도전’ 운운하며 이 문제를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물리적 진압을 통해 해결에 나서겠다는 것은, 국민적 저항만 더욱 키우는 일이다.

지난 9월 3일, 평화비행기·평화버스 행사에는 바로 전날 이뤄진 공권력 작전의 삼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2천여 명 이상의 시민이 모였다. 이 수치는 섬이라는 제주의 지리적 특성을 생각할 때 2만명 이상의 효과를 갖는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무력화를 위해 사람들을 구속하고 손해배상청구와 같은 방법으로 발을 묶으려하고, 구럼비 해안을 물리력으로 통제한다고 한들, 평화에 대한 열망과 부정의에 대한 저항의 흐름을 잠재울 수 있을까?

강정마을 구럼비의 자연은, 보여지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400여년 계속돼 온 이곳 주민들의 삶을 반영한다. 구럼비 자체는 이 마을 공동체의 역사이자 축적된 삶의 양식인 것이다. 구럼비 해안의 자연 그대로의 정경은 이곳 주민들 또한 이곳의 자연과 얼마나 평화적으로 관계해왔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들을 쏟아 붓고, 6만평 이상을 매립하는 기지사업을 벌인다고 하니,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백보 양보해 설령, 해군기지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아홉 종의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연산호 군락지과 붉은발말똥게와 같은 다양한 생명의 보물창고이자 아름다운 경관지인 이곳을 잘 보전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경쟁력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까?

강정마을에 추진되는 해군기지 건설문제는 새만금-부안-평택에 이어서, 국가사업의 정당성과 추진방식의 문제를 또다시 제기한다. 설득과 대화의 노력보다는 오직 국가사업이라는 이유로 ‘묻지마’ 추진에 나서고, 이에 대한 반대는 ‘종북좌파’로 매도하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압하는 것이, 이른바 국책사업 추진과정이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의 엄호와 이를 바탕으로 한 공안논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지금처럼 열려진 세상에서는 국가논리가 권위로서 작동할 공간은 협소하다. 이제, ‘국책사업’도 ‘국가안보’도 국민들의 광장으로 내려와야 한다. 반대와 이견(異見)을 감내하며 소통에 나서야한다. 그것이 진짜 효율성 있는 국가사업을 하는 방법이다. 무리한 추진논리와 방식으로 벌써 10년째 표류하는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이미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느 가을 오후, 높은 하늘을 배 위에 올려놓고 구럼비 바위에 팔베개하고 누워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가을의 파란하늘과 맞닿은 바다 지평선 아래로 산호들은 날마다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실은 수백 년 동안의 진실이었는데, 해군기지라는 거대한 괴물은 이 엄청난 진실을 기억과 그것으로부터 상상의 감옥으로 밀어넣으려 하고 있다. 그 수백년의 진실을, 다가올 가을 어느 날의 오후의 현실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이 감옥의 창살쯤이야 차라리 함께 산길을 넘는 벗일 뿐이다.

* 이 글은 인권연대(http://www.hrights.or.kr/)가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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