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인정해 주는 사회풍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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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인정해 주는 사회풍토 "고맙다"
  • 김동근 기자
  • 승인 2007.09.07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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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위조 파문]우리 사회의 구조적 단면

   
▲리서치전문기관 엠비존 김동근 연구원.
 [데일리경인 김동근 기자]꼬리에 꼬리를 무는 학력위조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화려한 독버섯의 유혹처럼 사회전반에 걸쳐 야금야금 좀먹고 있다. 실명을 거론해가며 떠들어 대는 언론이나 뒤늦게 반성하고 속죄한다는 당사자들이나 꼴사납긴 매한가지다.

사회에서 위풍당당 명성을 떨친 저명한 학력위조자들을 비난함이 아니다. 더더욱 옹호도 아니다. 단지 이들은 이 사회가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죄라면 죄일까. 학력위조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회풍토를 갈아치워야 한다. 

학력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사회. 그리고 추종자들. '진보'라 칭하는 사람들조차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더러 학력의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위증자들도 나타난다. 동문이라는 미명하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학력과 연계된 학벌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우습게도 이런 학력의 고리는 나에게도 뻗쳐 있었다. 오늘날 학력위조 파장이 어렴풋했던 내 과거의 기억으로 인도했다. 진학을 고심하던 고등학교 시절이 새삼 떠올랐다. 학력의 뿌리 깊은 단면을 여실히 보았기 때문은 아닌지 회상해 본다.

모범생도 아닌 문제아도 아닌 정말 평범했던 학상시절. 난 이도저도 아닌 어중이떠중이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중상위권 성적으로 문안하게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고등학교 수업방식과 생활은 나와 맞지 않았다. 때문에 학교생활이 즐겁지도 않고 성적은 바닥을 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공부도 못하고, 개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싸우면 얻어터지고, 나이만 처먹고..."
 
요즘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유행하는 개그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그야말로 고2때까지 허송세월을 보냈다. 상위권 학생 중심의 교육방식이나 교사 혼자만의 ‘열강’을 묵묵히 지켜봐야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특별히 재미를 느끼는 수업이나 과목이 없었고, 평균이상으로 잘했던 과목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에게 학교생활의 재미는 점심 전에 도시락을 먹고 쉬는 시간에 탁구를 치고, 체육 시간에 농구하는 것, PC게임 외에는 무료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의 큰 기로에 서게 됐다. 대학진학을 놓고 처음으로 내 자신과 맞서게 된 것이다. 

바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직업반으로 전향해야할 지를 놓고 부모님과 마찰을 빚었다. 3학년 진입생들 중 대학진학을 포기한 학생들에게 주어진 직업반 전향제도. 꼴통들을 구제하기 위한 훌륭한 제도라고 평가해야 할지, 낙오자들을 상위권 학생들과 떼어 놓기 위한 제도인지는 몰라도 내게 많은 혼란을 가져다 줬다. 

당시 대학을 구태여 가지 않더라도 기술을 배워 자격증을 따면 호의호식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판단했다. 주변 친구들도 몇몇 이미 전향신청을 마친 상태였다. 성적도 하위권에 주구장창 머물렀고, 크게 대학을 가야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결국 부모님께 직업반 전향을 강하게 요청했다.

한 번도 부모님의 뜻을 거역해본 적 없는 착한 아들이기에 부모님의 실망도 컸던 모양이다.
  
부모님은 나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셨고 크게 노하셨다. 동네에서 착하기로 소문난 부모님들이 그 이후로 나와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셨으니까. 나는 매일 같이 대학을 가질 않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어야 했다.

"사회에서 대학 않나오면 사람취급도 못 받는다. 남들보다 월급도 적게 받고, 야근도 더 많이 해야 한다. 이도 모자라 같이 입사해도 승진은커녕 부려먹다 버려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등등등..."
 
나중에는 ‘대학’ 얘기만 나와도 신물이 올라올 정도였다. 지금와 생각해 보니 이런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회 선배인 부모님들이 현장에서 겪은 경험이 고스란히 베어난 뼈있는 말들이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그런 것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논리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어차피 혼자 살아갈 수 없다면 구조 속에 일원이 되는 수밖에 없다. 지금껏 이 구조적 틀을 깨고 있는 학자나 논리는 없다. 애석하게도.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남은 1년동안 공부에 매진키로 했다. 다행히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고 수능을 보기 직전 중상위권을 선회하는 성과를 냈다. 덕분에 지방 4년제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왕이면 구조속의 조각이 아닌 뼈대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대학시절 나름 '사회조사분석'에 관심을 갖게 됐고 뒤늦게 학문에 흥미를 느껴 대학원도 진학했다. 지금은 졸업하고 작은 리서치전문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일도 마음에 든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력이라는 굴레는 나를 압박하고 있다. 강도가 약하다는(지방대출신) 면에서 유혹일 덜할 뿐. 단지, 고등학교 시절 비록 나의 결정은 아니었지만 일반 인문계 3학년으로 진학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학력위주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변명해 본다. 변명의 여지를 남겨준 사회풍토가 고맙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 옳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명 귀천이 존재한다. 직업이 아닌 타인의 시선이 개인의 가치를 만들어 세상 속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끝임 없이 '행복'이 무엇이냐고 되물어도 답은 없다. 오늘도 공허한 메아리만 울려 퍼진다. 학력위조 파문이 메아리치듯.

··································································· 덧붙이는 글 ······························································

김동근 기자는 리서치 전문기관 엠비존 연구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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