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빠진 ‘2007 서울국제도서전’
상태바
알맹이 빠진 ‘2007 서울국제도서전’
  • 이정하 기자
  • 승인 2007.06.07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판매 상술 논란, 국제관 텅 비어 씁쓸히 막 내려

제13회 서울국제도서전이 6일 막을 내렸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태평양관과 인도양관에서 6일간 진행됐다. '세계, 책으로 통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 도서전에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전세계 28개국의 출판사, 서점, 저작권 에이전시 521개사가 참가했다. 세계 10위의 출판대국의 명성에 걸맞은 적지 않은 규모다. 특히 국·내외 관람객만 20만 명에 이른다.  

   
 
  ▲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태평양관에서 열린 '2007 서울국제도서전'에 관람온 한 어린이가 책을 읽고 있다.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태평양관에서 열린 '2007 서울국제도서전'에 관람온 한 어린이가 책을 읽고 있다.
ⓒ 데일리경인 이정하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 행사기간인 6일 오전 이미 전시장의 국제관 부스는 텅텅 비어 있었다. 관련 출판관계자는 물론 일반 관람객들의 발길도 뜸했다. 이날 폐장은 오후 7시. 관람객들로 호황을 누린 국내 출판사 부스나 북아트 부스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휴일인 현충일을 맞아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때문에 '유종의 미'는 거두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서울국제도서전

이번 도서전에는 1947년 '조선출판문화협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한 대한출판문화협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특별 기념전이 마련됐다. 한국 출판계의 역사를 한 눈에 돌아볼 수 있도록 시대별로 구분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책들을 전시했다. 

한국전쟁기(1950-1959), 제3공화국기(1960-1969), 경제개발 및 출판산업 개발기(1970-1979), 사회과학의 시대(1980-1987), 상업출판물의 시대(1988-현재) 등으로 구분 전시한 것. 특히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조선말큰사전' '청록집' 등 1945-1949년 출간된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최근 현대출판의 흐름을 반영한 듯 가장 많은 관람객들이 몰린 북아트전시관은 호황을 누렸다. 80여개의 북아트 부스에는 10여개국 60개 업체 및 단체가 참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단순 인쇄활자가 아닌 예술적 감각을 곁들인 타이포그라피, 일러스트, 판화, 공예 등 다양한 예술분야와의 접목을 통해 '책'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아직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북아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된 시연 및 체험전이 주요했다. 

또 전시기간 내내 이벤트관에서 고은 시인 등 유명인사가 추천한 책 전시회, 남북 출판물 비교 전시회 및 북한 영상물 상영, 도종환 씨의 시낭송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작가 박완서, 신경림씨 등 유명 저자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도 마련돼 관람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 대한출판문화협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마련된 특별 기념전. 한국 출판계의 역사를 한 눈에 돌아볼 수 있도록 시대별로 구분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책들을 전시했다.
ⓒ 데일리경인 이정하
 
 
전시 목적 아닌 ‘판매’ 목적 아니냐

그럼에도 이번 도서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천안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김미정(21.여)씨는 "이번 도서전은 전시목적보다는 판매목적이 더 컸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도서전에 참가한 출판사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20~50% 가까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에 주력한 탓이다.

"출판업계의 장기적 불황을 반영한 듯 판매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니 씁쓸하다"는 이호남(42.구로구)씨. 그는 "책은 서점이나 인터넷으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며 "오히려 책소개나 전시된 책을 재대로 구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즉 출판사 관계자나 출판협회에서 전시품이나 관람의 이해를 돕는 ‘큐레이터’적 역할을 주문한 것. 도서 전시회가 아닌 시장통 같은 분위기에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또 이벤트성 행사보다 직면한 출판업계의 현실이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엿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도 상당수다.  

폐장 전 이미 자취를 감춘 국제관

서울국제도서전은 한국 출판의 세계화, 출판산업의 경쟁력 강화, 독서하는 사회 분위기 정착, 국민 문화 향유 기회의 확대라는 목표 아래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지난 1995년부터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1954년 시작된 서울도서전이 모태인 셈이다.

그러나 정작 '국제'자만 추가 됐을 뿐 명실상부한 국제도서전으로서의 평가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서전 마지막 날인 이날 오후 1시께. 독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대부분의 참가국 출판사들이 짐을 뺀 상태였다. 61개(24개국 129개사)의 부스 중 무려 40여 개 이상이 빈 부스.

   
 
  ▲ 한 국제관 부스의 출판사 관계자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 데일리경인 이정하
 
 
그나마 사우디아리비아관과 영문시사 잡지사만 출판사 관계자 및 전시기능을 재대로 갖추고 있었다. 여타 외국 출판사들은 문을 열었다고 해도 2~3권의 책들만 다량 진열해 놓았거나 출판사 관계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북아트나 국내 출판사들이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룬 반면 전시관 한쪽이 휑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세계, 책으로 통하다'라는 슬로건을 무색케 한 것.

도서전에 참가한 국내 출판사 한 관계자는 "다른 나라의 도서전에도 몇 차례 가봤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국제도서전 정도의 행사를 치를 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외국 출판사들에 대한 관심과 통역사 배치 등 언어소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며 "체계적이고 특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