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17일 사망, 원인은 급성 심근경색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8시 30분 사망한 사실이 19일 <조선중앙통신>(아래 통신)의 정오 중대발표를 통해 알려졌다.
통신은 이날 낮 12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보도문을 통해 “김정일동지께서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고 밝혔다.
이 보도문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공동 명의로 발표됐다.
통신은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해 한평생을 바쳐오셨으며 사회주의조국의 강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나라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해 불철주야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우리의 위대한 김정일 동지께서 너무나 갑자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시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통신은 “선군정치로 어버이수령님(김일성 주석)의 고귀한 유산인 사회주의전취물을 영예롭게 수호하셨으며 우리 조국을 일심단결된 불패의 정치사상강국으로, 그 어떤 원쑤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셨다”고 김 위원장의 활동을 표현했다.
아울러 통신은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서거하셨으나, 우리 혁명이 대를 이어 줄기차게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강력한 정치군사적지반을 다져놓으시고 우리 조국과 민족만대의 무궁번영을 위한 튼튼한 토대를 마련해 주셨다”면서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계신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위하여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며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은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고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을 굳건히 수호하며 더욱 철통같이 다져나가야 한다”고 해 북한 정권의 후계자가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임을 분명히 했다.
통신은 이어 ‘김정일 동지의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를 통해 “17일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됐다”면서 “발병 즉시 모든 구급치료대책을 세웠으나 17일 8시30분에 서거하셨다”고 사망원인을 설명했다.
한편,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 김일성 주석과 고 김정숙 여사 사이의 장남으로 1942년 2월 16일 출생했으며, 만경대혁명학원,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67년 당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과장을 거쳐 1971년 부부장, 1973년 중앙당 문화예술부장을 거쳐 중앙당 조직 및 선동선전담당비서에 올랐고, 1974년 당 정치위원회 위원이 되며 후계자로 기반을 공고히 했다.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 비서,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19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1993년 국방위원장에 선출됐다.
1994년 고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레 숨진 뒤, 1997년 당 총비서, 1998년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돼 활동해 왔다.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당시 김대중 대통령(2009년 8월 18일 서거)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또한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당시 노무현 대통령(2009년 5월23일 서거)과 만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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