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남양부 관아 남문 ‘와룡루’ 현판, 화성시에 기증

2011-11-26     한상훈 기자
▲ 풍화당기로회에 걸려 있는 와룡루 현판. ⓒ 뉴스윈

드라마로도 방영된 소설 ‘먼동’에도 등장하는 옛 남양부(南陽府) 관아(官衙) 남문의 누각(樓閣) 와룡루(臥龍樓)에 걸려 있던 현판이 지난 24일 경기 화성시(시장 채인석)에 기증됐다.

삼국시대 중국과의 교통로 역할을 했던 당성 시기부터 1914년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원부에 통합되기 전까지 남양부는 천오백여년 동안 독립적으로 운영된 행정기관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정3품 당상관이 부사(府使)로 임명돼 현재의 남양초등학교 인근에 위치했던 관아에서 집무를 봤다. 자료에 따르면, 남양부 관아에는 동헌(東軒), 객사(客舍), 서기청(書記廳), 순교청(巡校廳), 별순교청(別巡校廳), 사용청(使傭廳) 등의 건물이 있는데, 동헌 앞쪽에 위치한 누각이 ‘와룡루’다.

<여지도서> “남양”, ‘누정(樓亭)’에 “와룡루는 부 남문 위에 있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남문 2층에 있었던 누각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지역명인 ‘남양(南陽)’이 중국의 유명한 정치가인 제갈량(諸葛亮)의 출생지라는 이유로 남양부에서는 부내(府內)에 용백사(龍栢祠)라는 사우(祠宇)를 건립해 제갈량을 배향하고, 관아의 남문에 해당하는 누각에도 ‘와룡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향토사학자 홍승길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14년 남양군이 수원군으로 통합되면서 일제에 의해 대부분의 남양부 관아가 훼손됐다. 이때 시간과 위급사항을 알리는 싸이렌 대(臺)를 설치한다는 명분으로 와룡루도 파괴되기에 이르렀다. 다만 누각에 걸려 있던 현판은 풍화당에서 수습해 풍화당 정문의 후면에 게시하여 최근까지 보관돼 왔다고 한다.
 
이번에 기증된 와룡루 현판 좌측에는 ‘신유년(辛酉年) 중하(仲夏)에 금릉옹(金陵翁)이 쓴다’라고 기재돼 있다. 하지만 신유년이 정확히 어느 해인지, 금릉옹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어 앞으로 연구가 필요하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서해안 시대를 맞이하여 삼국시대 당성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남양부가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진지 100주년이 다가오는 시기에 남양부 관아의 마지막 유물인 와룡루 현판이 화성시에 기증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라면서 유물을 기증한 풍화당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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