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안성이 뜨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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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안성이 뜨는 이유는?
  • 자유기고가 지천
  • 승인 2007.09.2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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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목한 '바우덕이 축제'

  [데일리경인 자유기고가 지천] 안성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면 외지에서 찾아온 구경꾼들로 북적거린다. 신명나게 펼쳐지는 남사당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화려하지도 고상하지도 않지만 이를 보기위해 몰려든 관객들은 '징'소리와 함께 공연 속으로 빠져든다. 안성이 자랑하는 바우덕이 남사당패의 공연은 해질녘 이렇게 시작된다.

매주 토요일 관객들로 북적거리는 남사당 전수관
조선시대에는 많은 이들이 서구문화로 부터 우리 대중문화예술의 원류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현재의 대중문화 예술은 서구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민중 예술을 통해서 발전해온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시대 대중문화의 중심에는 항상 사당패가 자리 잡는다. 그리고 ‘바우덕이’라는 유일무이한 여자 꼭두쇠가 전국의 사당패를 대표했다.

바우덕이는 조선시대의 대중문화를 개척한 인물로서 연예인의 효시다. 조선후기 신재효에 의해 재정립된 판소리는 우리 음악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나 민중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했다. 대중문화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개성 있는 인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판소리 자체의 형식과 참여에 있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외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전승된 궁중음악인 아악이 있지만 종묘제례에 쓰이는 것일 뿐 대중문화와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남사당 하이라이트인 '줄타기'
그러나 사당패 중에서도 안성남사당 패에는 ‘바우덕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탁월한 실력으로 경복궁 중건에 동원되어 사기가 떨어진 많은 노동자들과 백성들에게 신명의 힘을 불어 넣어 줌으로써  대규모의 경복궁 중건사업이 차질 없이 마무리 될 정도였다.


민중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대중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시기에, 대중문화 특히 연예의 힘인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공로에 보답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은 바우덕이가 이끈 천민 집단인 안성 남사당패에 당상관 정삼품의 벼슬을 내려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안성남사당패 영기에 걸어준 옥관자였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유랑 천민집단이 당상관의 고관벼슬을 받은 것도 그러하지만 일개 놀이패에 벼슬을 내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조선의 사당패가 모여 공연을 하면 다른 사당패들이 정삼품의 바우덕이 남사당패에 절을 할 정도로 유명한 스타가 됐다. 자연스럽게 총 지휘를 담당한 바우덕이의 안성 남사당 패는 전국 어디에서나 공연이 가능한 최초의 전국구 공연단체가 되었다. 이때부터 안성 남사당패는 ‘바우덕이’ 라는 한 개인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러한 이름의 대중화는 우리나라 문화에는 전례가 없던 현상이었다. 바우덕이의 천부적인 예술적 능력과 스타기질이 이러한 유행어를 파생시킨 것이다. 이후 바우덕이는 조선시대 처음으로 스타로서 인정을 받는다. “남사당패가 왔다”가 아닌 "바우덕이"가 왔다는 그 시점이 바로 우리나라 연예계의 시초이며 민중에게 사랑과 동경의 대상이 형성된 일대 사건이라 할 것이다.


남사당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40~50명으로 조직된 풍물단체다. 남사당의 대표는 꼭두쇠라 불렀고 그 아래로는 곰뱅이쇠, 뜬쇠, 삐리, 저승패, 등짐꾼 등으로 직책이 나뉘어져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이들은 꼭두쇠를 중심으로 공연계획과 자신들의 기량을 연마했고 전국 장터나 잔칫집을 돌아다니며 풍물놀이는 물론이고 줄타기, 탈춤놀이, 창, 인형극, 곡예를 선보였다.


이후 안성의 풍물인들이 1982년, 남사당보존회를 구성했고 마지막 남사당 이었던 김기복 씨를 중심으로 남사당문화를 복원했다. 이후 안성 남사당풍물단은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 등 많은 공로를 인정받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세계 최고의 줄타기 고수인 권원태 씨
영화 ‘왕의남자’와 ‘장길산’등 영화와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해 유명인이 된 세계 줄타기 최고수인 권원태(41)씨는 “우리나라의 예술과 문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전통예술에 보다 많은 투자와 계승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대중적인 문화에서 소외된 남사당의 아쉬움을 여과없이 털어 놨다.

권 씨는 세계가 안성을 주목하게 된 이유는 “왕의남자 이전에도 바우덕이는 상설공연을 했었고 누가 봐주지 않아도 꾸준히 노력한 결과가 이제 나타나고 있다”며 “목숨을 담보로 공연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을 때까지 이일을 계속 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상임단원과 명예단원 50명으로 구성, 2002년에 창단한 <안성시립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은 꾸준한 노력과 투자로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가 됐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머물 수 있는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다.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머물고 쉴 수 있는 공간마련이 우선과제로 남아있다. 이를 위해 경기도와 안성시는 현재의 상설공연장 인근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대 공연장을 짓고 있으며 중, 장기적인 관광 상품화 대책을 마련해 지속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올해도 안성시는 10월 3일부터 7일까지(5일간) ‘남사당 바우덕이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며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바우덕이의 예술정신과 남사당의 민족민중문화를 계승해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축제관련 문의사항 : 바우덕이 축제위원회 031-676-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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