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5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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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5적
  • 한겨레21
  • 승인 2010.01.3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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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건설오적’ 재주 좀 봐라!

건교부·건설업체·토공과 주공·언론·투기꾼 등 서민 울리는 현대판 오적
택지개발촉진법을 무기로 광활한 논밭 갈아엎어 끼리끼리 나눠먹는다

 

우리나라는 이상한 나라다. 집이 모자라다고 해서, 아파트를 지어 공급을 확대하면 집값이 되레 오른다. 주택 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는데, 정부에서는 “아직도 집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아파트 숲이 올라가는 속도에 견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서민의 수는 많지 않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의 올해 국감자료를 보면, 도시근로자 가구가 돈을 모아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33평짜리는 30년, 25평짜리는 23.2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참여정부 들어서만 전국의 아파트 평당 가격은 14.0%, 강남에서는 43% 올랐다.

 


△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건교부 퇴직자, 로비스트로 재취업

 

정부는 (그렇기 때문에) “집을 더 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토공·주공은 열심히 논밭을 갈아엎어 택지를 만든다. 건설자본은 그 땅에 아파트를 지어 폭리를 취하는데, 언론은 그 광경을 뻔히 바라보면서 애써 침묵을 지키거나 자본 역성을 든다. 그 틈바구니에서 폭리를 취하는 것은 투기꾼들이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 “주택시장의 왜곡을 틈타 ‘건설오적’들만 살맛 나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건설오적이란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는 건교부(재경부) 등 ‘경제관료’, 이들의 총애를 받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건설업체’,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이라는 무시무시한 법률을 통해 이들에게 싼 가격에 택지를 팔아치우는 ‘한국토지공사·대한주택공사’, 이들에 기생해 광고를 따먹으며 여론을 호도하는 ‘언론’, ‘전문 투기꾼’ 등이다.

건설오적들은 다양한 교류를 통해 서로의 이해를 하나로 맞춘다. 가장 쉬운 방법이 인적 교류다. <한겨레21>은 1995년부터 지난 3월까지 건교부에서 퇴직한 3급 이상 고위 공직자 명단(177명)의 정보공개를 청구해, 그들의 재취업 현황을 분석해봤다. 분석 결과, 전체 퇴직자 177명 가운데 134명이 건교부 관련 단체와 산하 기관 74곳에 골고루 흡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취업하지 않은 간부 43명은 △사망 △선거 출마 △개인 사업 등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성기수(관리관), 김진열(이사관), 손순룡(이사관), 윤오수(부이사관), 박영준(이사관)씨 등 6명은 관련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명예 퇴진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재취업률 75.7%. 확실히 건교부 낙하산의 위력이 셌다.

 


△ 판교 택지개발예정지구 안에 있는 남수금씨의 집이 강제철거된 것은 8월23일 새벽 4시께다. 그는 천막을 쳐놓고 위태로운 삶의 끈을 잇고 있다. (사진/ 윤운식 기자)

 

 

건교부 간부들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수자원공사(2명)·고속철도건설공단(3명)·대한주택공사(2명) 등 정부 산하기관의 임원으로 재취업되기도 했지만, 주위의 보는 눈이 많아져서인지, 더 강력한 낙하산 때문에 엄두를 못 내서인지, 최근 들어 그런 경향은 다소 줄어들었다. 그들이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곳은 건설·교통 등 ‘나와바리’(구역) 업계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협회·조합 등이다. 그들은 이들 단체에서 이사장·상임부회장·감사·상임이사 등을 하나씩 꿰차게 된다.

<한겨레21>은 이들이 흡수된 74개 기관 가운데 대한건설협회·한국주택협회·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건설공제조합·한국건설감리협회·전문건설공제조합·한국건설CALS협회·대한전문건설협회·대한설비건설협회·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등 10개 기관을 건설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라고 판단했다. 이곳에 취업한 건교부 출신 고위 공직자는 모두 30명이다. 박정식 경실련 공공예산감시팀장은 “이들은 업계의 이익을 건교부에 전달하기 위해 고용된 로비스트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표 참조).

꼽은 단체 가운데 한국주택협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국주택협회는 건설업계 내부에서도 건교부에 ‘청탁성 로비’를 가장 세게 하는 기관으로 꼽힌다. 이 단체의 상근 부회장 자리는 연봉 1억원, 판공비 연 2억5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주택협회는 2003년부터 불거진 분양원가 공개 논란에서 ‘원가 공개 절대 반대’ 입장을 밀고 나갔고, 결국 논란은 소형 평형에 원가연동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을 지낸 김종철씨가 5년째 협회의 상임부회장 자리를 맡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도 만만치 않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소형주택 의무비율 폐지 △제2종 일반주거지역의 높이제한 폐지 등 정부의 각종 규제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택지개발 독점권 보장된 토공·주공

 

 

 


△ 재개발 예정인 서울시 강동구 성내동 저층 아파트 단지. 택지개발촉진법은 전 국토를 아파트 숲으로 바꿔버렸다.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건교부와 토공, 주공, 건설업체를 연결하는 또 다른 축은 택촉법이다. 1980년 12월 전두환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든 택촉법의 뼈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어디에 있는 누구의 땅이든 건설교통부 장관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면 땅은 강제 수용돼 택지로 개발된다(이 과정에서 땅 주인과 협의할 필요는 없다). 둘째, 건교부 장관에게 지구 지정을 신청할 수 있는 기관은 국가·지자체·토지공사·주택공사뿐이다. 따라서 주공·토공이 택지를 개발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갖는다. 즉, 토공·주공의 택지개발 독점권이 보장된다. 셋째, 지구로 지정되면 사업 시행자는 도시계획법을 비롯한 19개 법률이 정한 결정·인가·허가·협의·면허 등 32개에 달하는 처분을 받지 않아도 된다. 개발의 각 단계마다 적당히 조절해줄 견제장치들을 무력화한 셈이다. 건교부가 주공·토공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활한 논밭과 평야를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면 민간 건설회사들은 이 땅을 분양받아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로 어마어마한 돈을 거둬들인다. 민간 건설회사들이 그 땅을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넘겨받는다.

 


△ 택지개발촉진법으로 '건설오적'은 떼돈을 벌지만, 철거민 신세로 전락한 세입자들은 갈곳이 없다. 1989년 일산 농민들의 신도시 반대 시위. (사진/ 한겨레)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건교부는 2002년 초 분양가 자율화 이후 공공택지를 수의계약으로 공급받아 폭리를 취하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택촉법 시행령을 개정해 경쟁입찰제도를 도입할 움직임을 보인다. 건교부의 배신에 한국주택협회 등 관련 이익단체의 반발이 시작됐다. 이들은 “택지 가격이 상승하면 결국 분양가가 인상돼 수요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시행령 개정은 업계의 반발로 유야무야됐고, 경쟁입찰제가 도입되면 오를 것이라던 분양가는 수의계약제도가 유지됐는데도 폭등했다.

내집마련정보사가 2000년부터 올해까지 서울에서 동시분양된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0년 663만원에서 올해 1205만원으로 81.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상승폭은 대부분 2002년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2002년 793만원, 2003년 1070만원, 2004년 1169만원으로 늘었다. 업계는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은 꼴이다.

건설업계 눈치보며 택촉법 시행규칙 바꿔

이에 앞서 건교부는 2001년 7월18일 택촉법 시행령을 바꿔 노골적인 건설업계 편들기에 나섰다. 수의계약을 인정하는 기준 시점을 택지개발예정지구 공람공고일 1년 이전에서 예정지구 지정일 현재 소유권 이전 계약을 맺은 상태로 완화한 것이다. <한겨레21>이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에게서 입수한 ‘파주운정신도시 협의양도사업자 현황’을 보면, 이전 기준으로는 업체쪽에 수의계약으로 넘어가는 물량이 3만5천평밖에 안 되지만, 바뀐 기준을 대입해보면 이보다 14.9배나 넓은 53만평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실련은 2000년 이후 수도권에서 분양된 28개 택지개발지구(174만874평) 가운데 61%인 106만6548평이 수의계약으로 건설업체에 넘어간 것으로 본다.

 

건교부는 업계의 이익을 위해 ‘묘기’까지 부린다. 올해 3월9일 택촉법 시행규칙 11조를 바꿀 때 입법예고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무상 공급’이라는 넉자를 더 넣어 업체에 수의계약으로 분양해주는 땅의 넓이를 대폭 늘렸다. 이를 판교지구에 대입해보면, 수의계약으로 땅을 분양받을 수 있는 6개 업체가 가져가는 땅의 전체 넓이는 1만5678평에서 2만7738평으로 늘어난다. 사람들이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시행규칙에, 입법예고에는 없었던 넉자를 기어코 집어넣은 집요함이 놀라운 뿐이다. 김학송 의원은 “이는 참여정부와 건교부의 밀실행정의 전형”이라고 지적했지만, 건교부는 “법제처 심사 과정에서 의미를 좀더 명확하게 만들어 혼란을 피하려고 했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입을 씻었다.

 

 


△ 건설오적들이 땅 나워먹기를 한 파주 운정지구에서는 문화재 시굴 조사가 한창이다. 파주 와동초등학교 학생들은 포클레인의 굉음을 아침 저녁으로 들으며 등하교한다. (사진/ 윤운식 기자)

 

건설오적의 네 번째 축인 언론은 짭짤한 광고 수입에 길들여져 건설업체들의 천문학적 폭리를 알고도 눈감는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2003년 9월25일부터 10월25일까지 한달 동안 조·중·동 3개 신문의 광고를 모니터링한 결과 이들 신문의 지면 대비 광고 비중은 평균 48.2%, 건설업계의 광고 비중은 23.7%인 것으로 나타났다. 독자에게 배달되는 신문 4장 가운데 1장이 건설업체의 광고인 셈이다. 이들 메이저 신문과 건설업체 광고에 목을 매는 경제신문은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 ‘주택 가격 안정’이라는 표현 대신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표현을 써 독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김성달 경실련 시민감시국 간사는 “분양원가 공개에서부터 판교 개발까지 아무리 보도자료를 뿌려대도 이를 제대로 보도하는 신문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배를 불리는 것은 건설업자와 부동산 투기꾼들이다. 경실련은 지난 6월 택촉법으로 개발된 ‘판교 열풍’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6달 동안 분당·용인 죽전·수원 영통·용인 동백·화성 동탄 등 판교 신도시 주변 지역의 집값이 11조120억원이나 폭등했다고 분석했다. 경실련은 또 판교발 태풍은 서초·강남·송파·강동 등 서울 강남권 4개구의 집값을 끌어올려 같은 기간에 이들 지역의 집값 총액도 23조4034억원이나 불어났다고 밝혔다.

투기는 보상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7월 발표한 ‘판교신도시 토지 보상자·보상금 현황’에서 토공·주공·성남시 등 3개 기관이 판교신도시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불한 보상금 2조5189억원 가운데 64.1%인 1조6154억원이 서울 강남, 성남 분당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돌아갔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삼부토건·신구종합건설·한성 등 6개 건설회사는 판교 지역의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 이전에 땅을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땅 보상을 노린 명백한 투기다.

 

 


 

 

 

25년 동안 여의도 178배 넓이에 아파트 건설

 

박태견 <프레시안> 논설주간은 9월에 나온 <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에서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의 발을 잡은 것은 “일본형 공황 도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적었다. 가뜩이나 내수경기 침체로 경제가 위태로운 판에 분양원가를 공개해 아파트값이 뚝 떨어지면 아파트 담보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이 부실해지고 재산이 줄어든 사람들의 소비가 줄면서 제2의 외환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논리다. 그는 또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는 8·31 대책에서 △강남 송파에 200만평을 비롯해 앞으로 5년 동안 수도권에 4500만평의 주택용지를 추가 공급하고 △강북의 층고제한을 해제해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을 가능하게 한 것은 참여정부가 건설족의 논리에 완전히 발목이 잡혔음을 드러낸다고 적었다. 이 혼란 속에서 웃는 것은 건설오적이고, 우는 것은 집없는 대다수 서민이다.

1999년 경기 남부지역에서 개발이 끝났거나 진행 중인 공공택지는 178만평이다. 주택 200만호 건설을 외치며 노태우 정권 때 만든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보다 1.4배나 넓은 면적이다. 그뿐인가. 파주 운정지구 등 4곳에서는 2기 신도시 56만평을 개발 중이다. 법 도입 이후 25년 동안 택촉법은 1억5861만7천평의 땅(여의도의 178배 넓이)을 아파트 숲으로 바꿔버렸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공기’처럼 돼버린 택촉법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택촉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금준미주는 천인혈’이라고 했던 춘향전의 한 글귀가 생각난다”며 “그 공과는 머잖은 장래에 반드시 재검토·재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출처]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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