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가슴에 못질하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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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슴에 못질하는 조선일보
  • 이대희 기자
  • 승인 2008.09.22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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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유모차를 끌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주부들까지 수사하겠다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더욱이 경찰은 조사 대상이 된 주부들의 집으로 불시에 들이닥쳐 ‘협박성 발언’을 하는 등 수사 과정에서도 물의를 빚었다.
아이들의 건강을 걱정해 거리로 나선 주부들을 처벌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이없는 것이다. 경찰은 이번에 조사 대상이 된 주부들이 ‘집회 참여를 선동했다’, ‘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방해했다’고 궁색한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주부들의 촛불집회 참여를 누군가의 ‘선동’으로 바라보고 ‘배후’, ‘주동자’를 찾겠다는 경찰의 시각은 여전히 시민들의 정서와 의식 수준을 얕잡아 보는 것이다.
‘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방해했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지난 촛불정국에서 이른바 ‘유모차 부대’, ‘유모차 시위’는 평화집회의 상징처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또 주부 한 두 명이 ‘도로 점거’를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모든 시민들이 알고 있다. 수십 만 명이 참여한 평화적인 거리행진에 참여한 일이 수사 대상이 된다면 수백만 촛불집회 참가자 전원을 수사하고 처벌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조중동은 경찰의 이런 억지 수사를 비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선일보는 ‘아동학대 논란’ 운운하며 사건의 본질 자체를 왜곡하면서 아이들과 촛불집회에 참여한 주부들을 매도하고 음해했다.
조선일보는 20일 기사 제목을 <‘아동학대 논란’ 유모차 시위…30대 여성 불구속 입건>(9면)이라고 달았다.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억지 수사를 ‘아동학대 논란’으로 바꿔치기 하려는 제목이다. 기사는 “경찰이 아기를 태운 유모차로 경찰 살수차 앞을 가로막은 유 모씨와 인터넷 포털 다음의 ‘유모차 부대 엄마들’ 카페 운영자들을 소환했거나 소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면서 유모차로 경찰 살수차를 가로막은 유 씨의 행동을 둘러싸고 인터넷에서 ‘아동학대 논란’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22일 10면 기사 <‘유모차 시위’ 다시 논란>에서 또 한번 사건의 본질을 ‘아동 학대’로 몰아가려 했다. 기사는 촛불시위 당시 유모차 시위가 “‘아동학대냐, 적극적인 모성의 표현이냐’는 논란을 나았다”며 “경찰이 최근 주도적인 시위자에 대해 불법시위 혐의로 조사를 착수하면서 당시의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경찰이 힘 없는 주부를 상대로 강압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해당 카페 회원과 네티즌,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비판을 전한 뒤 바로 이어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 아이를 앞장 세운 주부가 비정한 것 아닌가’며 경찰의 수사가 당연하다는 반응도 많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논란이 확산되자 수사 대상이 ‘유모차 시위대’ 전부가 아니고, 명백하게 불법혐의가 짙은 3명 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될 수 있다고 고지하는 것은 다른 수사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통상적이며 적법한 절차” 등 경찰 측의 입장을 전했다. 또 “경찰은 유모차 부대 시위가 어머니·여성·아기의 이미지를 이용해 불법 집회를 미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본다”며 마치 ‘유모차 부대’가 시위를 위해 아이를 동원한 것처럼 몰아갔다.
심지어 22일 1면 <팔면봉>에서는 “‘유모차 부대’ 수사에 “힘없는 엄마 수사한다” 비판. ‘강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엄마’라 했는데?”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20일 10면 기사 <‘유모차 쇠고기 시위’ 선동 카페 운영자 수사>에서 ‘유모차를 동원한 여성들의 집회 참여를 선동하는 글을 올렸다’, ‘유모차로 경찰의 물대포차 2대의 진로를 가로 막았다’는 등의 경찰 주장을 전했다. 반면 조사 대상 주부들이나 네티즌들의 반발 등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22일 14면 기사 <‘유모차 시위자’ 수사 논란에 경찰 “적극 가담자 적법수사”>에서도 경찰의 변명에 힘을 실어주었다. 기사는 “서울 경찰청은 일부 언론과 야당이 ‘죄 없는 엄마들까지 잡아들여 ‘공안 정국’의 볼모로 삼으려 한다’며 비판하자 이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적법한 수사 절차라고 밝혔다”며 조사 대상 주부들이 “폭력 시위가 한창이던 6~8월 회원들에게 시위 참가를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수십 명과 함께 집단으로 참가한 사람들”, “수사 대상자 3명은 단순 참가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가담자”라는 경찰의 주장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20일 8면 기사 <다음 카페 ‘유모차부대’ 운영자 수사>에서 “서울 경찰청은 19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유모차를 동원해 참여하도록 선동한 다음 카페 ‘유모차부대’ 운영자 정모 씨 등 세 명에 대해 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고 전하는 데 그쳤다.

반면 한겨레는 기사와 사설을 통해 경찰의 이번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22일 2면 기사 <‘촛불 유모차’까지 들쑤시는 경찰>에서 “이번 수사 대상이 일부 과격 시위자가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 표현을 한 평범한 주부들이라는 점에서 ‘촛불의 씨를 말리려는 겁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형평성을 잃은 경찰의 수사태도도 비판했다. 기사는 “지난 6월 여의도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앞에 가스통을 싣고 가 시위를 벌인 고엽제전후회 회원들의 경우 2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촛불시위 때 차량시위를 벌인 혐의로 ‘촛불자동자연합’ 운영자 정아무개씨 등 25명을 입건한 반면 고엽제전후회가 100대가 넘는 차량을 동원해 경광등을 울리며 요란한 도심시위를 벌인 행위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사설 <이젠 엄마들까지 위협하는 공안정권>에서는 엄마들의 촛불시위 참여가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걱정해 촛불을 들고 나선 것”으로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나 집회·시위의 자유로 봐도 당연히 허용되는 행동”이며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이 폭력·과격 시위자일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일 말고도, 엄하게 처벌할 일이 아닌데도 경찰이나 검찰이 보란 듯 무리한 수사를 벌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며 “겁을 주어 비판의 입을 틀어막거나 욕보이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며 경찰의 무리한 ‘촛불’ 수사 행태를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20일 8면 기사 <‘유모차 부대’까지 수사한다고?>에서 ‘유모차 부대’ 주부들에 대한 경찰의 수사를 보도했다. 아울러 “세 아이 엄마인 내가 촛불집회에 나선 이유는 깨끗한 먹을거리와 바른 교육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 “아이들의 먹을 거리가 걱정돼 나온 주부들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 등 ‘유모차 부대’ 카페 회원들의 인터뷰를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수백 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촛불집회에 굴복해 국민들에게 두 번이나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촛불이 수그러들자 이명박 정권은 가혹한 탄압으로 대응하며 국민의 뒤통수를 쳤다. 이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해 촛불을 들었던 엄마들마저 처벌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졸렬함에 기가 막힌다.
정부가 졸렬하다면 조선일보는 사악하다. 조선일보는 경찰의 무리한 수사가 여론의 비난을 받을 것이 뻔하자 ‘아동학대’라는 왜곡된 프레임을 유모차 시위에 들이댔다. 폭력성의 극단을 보여준 일본 제국주의와 군사독재에 부역했던 조선일보가 ‘엄마의 마음’, ‘모성성’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그러나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촛불을 들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음해하고 모욕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 자식을 ‘시위의 수단’으로 삼는 어머니는 없다. ‘유모차로 물대포를 막았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아이들까지 섞여 있는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겠다고 나선 경찰이야 말로 어린이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매정한 공권력’이 아닌가?
‘모성 보호’는 한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재생산되기 위한 조건이다. 경찰은 ‘엄마들’에 대한 억지 수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조선일보도 엄마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는 악의적 왜곡을 중단하라. 조선일보가 <팔면봉>에서 비아냥거렸듯 ‘어머니는 강하다’. 힘없는 주부들을 탄압 속에 점점 더 ‘강한 어머니’로 단련시키는 일은 이명박 정권에게나 조선일보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 22일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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