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성적 따라 줄세우기’가 개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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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성적 따라 줄세우기’가 개혁인가
  • 김광충 기자
  • 승인 2008.09.2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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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참석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에게 수능 고교별 점수와 학업성취도 점수 결과를 넘겨주기로 했다. 교육부는 그동안 수능 점수 공개를 거부해 왔다. 수능 성적을 공개할 경우 학교 서열화 등 우리 교육에 끼칠 부작용이 너무 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조중동은 안 장관의 ‘수능 성적 공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환영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학부모에게까지 성적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중앙일보는 한발 더 나가 ‘평준화 정책을 수정하라’는 주문을 내놓기까지 했다.

중앙일보는 19일 6면 <“학력 격차 숨기는 시대 끝났다”/평준화 깨기 교육개혁 가속도>에서 수능 점수와 학업성취도 결과, 교원단체 가입 현황 공개 등을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으로 규정하고 핵심은 “‘평준화 교육’을 깨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같은 면 <MB 교육참모 키운 건 수능 원 데이터 논란?>에서는 “이주호 전 의원이 시작한 학력정보 공개 요구를 4년 뒤 고교 후배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이끌어 냈다”고 평가했다. 기사는 이들이 “평준화 기조에 경쟁과 수월성을 보완하려 했다”며 “논리와 정책을 가다듬어 ‘이명박 정부의 교육 브레인’으로 성장했다”고 추켜세웠다.
같은 날 사설 <수능 원점수 전면 공개해야>는 아예 ‘3불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고교 하향 평준화 정책’에 일대 변화가 와야한다”는 것이다. 또 “한국 교육계가 경쟁을 외면하고 평등주의적 발상에서 편하게 지내왔다”며 안 장관의 학력정보 공개가 “교육계에 새바람을 일으킨다는 점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수능성적 공개에 따른 학교 서열화와 입시 정책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그런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며 ‘교과부 일부 관료들과 교원단체들의 반대’ 정도로 치부했다. 오히려 성적공개가 “학부모와 학교 관계자들에게까지 공개돼 진학에 도움을 주고, 학교 간, 교사 간 경쟁으로 이어져 공교육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교육 당국이 정보를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학부모에게까지 수능 원자료가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일 사설 <수능 성적자료 학부모도 알아야 한다>는 “수능 원 자료 공개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던 교과부가 한걸음 물러서 ‘정책 수립’ 또는 ‘연구’용으로 공개하겠다고 한 것은 진일보한 자세”라고 평가했다. 또 “수능 원자료 분석을 통해 고교별 지역별 성적이 드러나 성적이 떨어지는 고교와 시도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며 “학생 학부모같은 교육 수요자에겐 득이 되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고교선택제 도입을 앞둔 서울시의 경우 “학교별 수능 평균 점수는 핵심적인 정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도 앞서 18일 1면 기사 <전국 수험생 수능성적 사상 처음 공개한다>에서 “수능성적이 국회에 전달되고 분석되면 학교 간 학력차가 확연히 드러나게 돼 입시정책의 근간이 바뀔 가능성도 높다”며 안 장관의 수능 점수 공개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면 한겨레는 안 장관의 수능점수 공개가 학교서열화 등의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18일 1면 기사 <고교별 수능점수 공개 가능성>은 “(조전혁 의원이) 정보공개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전국 초·중·고교별 성적 순위가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18일 12면 기사 <교과부 “정권 바뀌었다” 공개불가 철회>에서는 교과부가 그동안 ‘학교 서열화와 과열경쟁, 교육과정 파행 운행 등 공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수능 원점수 공개에 반대해 왔다’며 교과부가 ‘정권이 달라진 뒤 입장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19일 사설 <안병만 교과부장관의 경솔한 언행>에서 교과부가 “그동안 수능 원자료가 공개되면 전국 학교의 서열화 등 공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줄게 명백하다는 이유로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해 왔다”며 안 장관이 교과부 차원의 내부 정책협의도 없이 원칙을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또 ‘의원들에게만 전달하는 것이며 외부에 공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교과부의 해명에 대해 “복수의 의원들에게 제출된 자료가 얼마나 보안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이며, 의원들 또한 밀봉해두려면 무엇하러 자료를 손에 넣으려 했겠는가”라며 성적자료유출을 우려했다. 아울러 대법원 판결 전까지는 비공개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병만 장관의 17일 발언대로 수능 점수 데이터가 국회에 넘어가고, 만의 하나 학교별 점수 등이 공개될 경우 이는 곧바로 학교 서열화로 이어지게 된다. 교과부도 이런 점을 우려해 그동안 수능 점수 공개에 반대해 왔다. 그러나 안 장관은 그동안 지켜온 원칙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교육정책을 책임지는 교과부 장관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처사다.
수능 점수 공개와 그에 따른 학교 서열화는 ‘고교등급제’로 이어질 우려가 매우 크다. ‘고교등급제’는 선배들의 성적이 대학입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며 ‘최소한의 기회 균등’의 원칙 마저도 훼손하는 제도다. 뿐만 아니라 높은 ‘서열’의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이 과정에서 교육양극화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조중동이 수능성적 공개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돕는다고 미화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사교육의 열풍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줄세우고 학력 ‘격차’를 드러내는 것이 우리 교육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교육의 ‘경쟁’ 강화를 주장하려면 ‘경쟁의 기회’가 공정하게 제공되는 교육 환경부터 만드는 데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공교육 정상화’라는 사실을 조중동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에 나서지 못한다면 공교육을 더욱 파괴하는 주장을 자제하는 양식이라도 보여줄 수 없는 것인가?./ 19일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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