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의를 땅에 처박은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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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정의를 땅에 처박은 재판부
  • 김광충 기자
  • 승인 2008.07.17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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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월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민병훈 부장판사)는 경영권 불법승계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한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하고 차명주식 거래를 통한 조세포탈 혐의는 일부만 유죄로 판단했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 백승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위원장 김진방)는, 지배주주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계열회사들에게 천문학적 손해를 가하고, 막대한 규모의 차명계좌 운용을 통해 금융거래질서를 위반함과 동시에 막대한 규모의 세금을 포탈한 이건희 전 회장 등 삼성그룹 경영진의 범죄행위에 대해 사실상 총체적인 면죄부를 발부한 재판부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재벌 총수 일가의 범죄에 대한 봐주기 판결들을 통해 사법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던 사법부는 오늘 드디어 한국의 재벌총수일가가 치외법권 지대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법원은 스스로 한국의 사법부가 더 이상 사법정의를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언했으며,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행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재벌총수 앞에 무력한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해줄 국민은 이제 없을 것이다.  

에버랜드 건에 대해 재판부는 회사의 자금조달 측면에서 회사 경영자에게 신주발행에 대응하여 최대한 많은 자금이 회사에 들어오게 할 임무가 없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이는 피고측 변호인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서, 전환사채 등을 적정가격에 발행하지 않아 배임죄 유죄 판결을 내린 기존 대법원 판결이나 이사에게 자본충실의무를 지우고 있는 우리 회사법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다.

이 판결의 논리대로라면 주식의 가치가 1주당 천만원인 회사가 1주당 1,000원의 가격으로 주식을 발행하더라도 그것이 주주배정의 방법이기만 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이상한 결론이 된다. 또한 재판부는 기존 법인주주들이 비서실의 지시를 받고 실권하였다 하더라도 스스로 용인한 것이므로 배임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이 사건에서 그러한 의사표시는 법률적으로 통모에 의한 배임행위로서 법인주주이사들의 권한남용행위에 해당하여 당연무효라고 보아야 함은 물론, 형식만 주주배정이었지 그 실질이 제3자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행위를 그 실질에 기초하여 판단하지 아니한 채 주주배정을 가장하기 위해 범죄자들이 취한 실권절차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따라서 형식적인 실권절차의 존재만을 이유로 실질상 제3자발행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에 대해 피해자의 승낙 운운하며 무죄를 선고함은 재벌총수일가를 봐주기 위한 재판부의 형식적 논리조작이라고 할 것이다.  
 
SDS BW 발행 건과 관련하여서도 재판부는 공정위가 산출한 주당 14,536억원이나 55,000원의 거래실례를 무시한 채 애초 발행가액인 7,150원보다 약간 높은 8,885원으로 산정(손해액을 44억원으로 볼 경우)하여 결과적으로 공소시효가 도과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는 IT기업의 적정가액은 미래수익가치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무시한 것임은 물론, 해당 기업특성과는 전혀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증법상 평가방법을 원용한 것으로서 저가거래를 목적으로 상증법에 의한 평가방법을 고의로 선택한 피고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당시 피고인들이 해당주식의 가액을 평가할 떄 어떤 목적을 가지고 평가방법을 선택했는지는 자명하다. 즉 피고인들은 해당기업의 수익가치가 높다고 보고 향후 상장차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고의로 상증법에 의한 평가를 해서 저가로 주식을 취득하기로 기획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미래 수익가치를 일부 반영하는 모양새만을 갖추어 교묘하게 피고인들의 논리를 사실상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러한 모양새 역시 면죄부를 주기 위한 형식적 논리조작에 불과한 것이다.

당시 삼성SDS의 장외시장의 거래가격은 미래 수익가치를 중심으로 형성된 적정가격이었다. 장외거래 사례가 충분히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적정가치를 반영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유사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배임죄 유죄 판결이 확정된 맥소프트 사건과 비교해서도 삼성SDS의 장외거래사례를 적정가격으로 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재판부는 또 상장주식의 양도소득에 대한 과세규정이 신설되기 이전인 1998,.12.31 이전에 차명으로 주식을 취득한 이후 그 주식을 양도한 경우에는 주식의 양도와 양도소득세의 미신고라는 행위만 있을 뿐이므로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인 행위라고 볼만한 행위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하여 2003년 이전 분에 대해 공소시효가 도과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는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양도소득세 포탈금액을 줄여 사실상 처벌 대상을 축소한 것일 뿐이다. 차명주식 보유 자체는 이미 금융실명법상 불법이고 상장주식의 양도소득에 관한 과세규정이 신설된 이후에도 여전히 실명으로 전환하지 않아 조세회피를 하고 있었으며, 상장주식양도차액 과세규정 신설 이후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과세할 근거가 충분하고 이는 조세범처벌법상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인 행위에 해당된다.

기존 판례와 법리를 무시하고, 교묘한 형식논리를 동원하여 면죄부를 발부한 재판부는 이건희 전 회장 일가와 삼성그룹에게 초법적 지위를 부여해준 대신 국민에게는 사법불신만을 안겨주었다.

삼성특별변호인단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던 함량미달의 수사로 이번 판결을 자초한 삼성특검은 책임을 통감하고 즉각 항소하여야 할 것이며, 사법부는  사법정의를 땅에 떨어뜨리고 국민의 신뢰를 포기한 오늘 판결에 대해 각성하고 이를 스스로 시정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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