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조선일보’, KBS 비난할 여력 있나?
상태바
‘위기의 조선일보’, KBS 비난할 여력 있나?
  • 김광충 기자
  • 승인 2008.07.07 1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일 조선일보가 <KBS는 조선중앙TV 서울출장소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지난 1일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쌈-촛불, 대한민국을 태우다’(이하 ‘시사기획 쌈’) 편을 북한의 ‘조선중앙TV’에 빗대 맹비난 한 것이다. 비난 이유는 촛불집회를 87년 6월 항쟁에 비유했다는 것.

사설은 ‘시사기획 쌈’이 6월 항쟁을 어떻게 다뤘는지 자세히 설명한 후 “KBS의 편집 의도는 쇠고기 촛불시위가 21년 전 군사정권에 대한 항거(抗拒)와 똑같은 성격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몰아가려는 것”, “불과 반 년 전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국민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을 군사독재자에 견준 것”이라며 KBS가 “6월항쟁 때처럼 국민에게 반(反)정부 투쟁에 나서라는 선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왜 촛불집회와 6월 항쟁을 연결시키면 안되는 것인지, 촛불집회의 성격과 6월항쟁의 성격은 어디서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KBS가 “6월항쟁이여 다시 한 번”을 외치며 “사실상 정부 전복투쟁 선동대의 맨 앞줄에 나섰다”고 그야말로 선동적으로 비난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사설을 통해 조선일보가 지금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특히 방송의 영향력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보게 되었다.
조선일보가 ‘시사기획 쌈’을 이토록 근거 없이 맹비난한 의도는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조선일보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시사기획 쌈’이 촛불집회를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연결시킴으로써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독재정권’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데에 불안을 느꼈을 수 있다.

또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시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정연주 사장 체제의 KBS’를 색깔공세로 흠집내고 싶었을 것이다. 방송과 인터넷이 촛불의 ‘진원지’, ‘배후’라고 주장했던 비뚤어진 시각의 연장에서 공영방송을 ‘거짓말 방송’, ‘선동방송’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라고도 읽힌다.

나아가 ‘시사기획 쌈’이 촛불집회의 흐름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배후론’을 비롯한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의 주장을 생생하게 반박했다는 데에 두려움을 느꼈을 수 있다. ‘시사기획 쌈’이 시민 인터뷰와 촛불집회 현장의 모습을 통해 촛불집회의 자발성, 자기정화 능력, 개방성과 상상력, 의제설정 능력 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촛불정국’을 통해 조중동의 사회적 영향력은 급격하게 줄어든 반면 방송의 영향력은 조중동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조중동이 아무리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해도 방송이 이를 쫓아가지 않는 한 조중동의 왜곡보도가 시민들에게 그대로 통하지 않았다.
또 인터넷과 인터넷을 활용한 새로운 미디어의 여론형성 기능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은 어떻게 해서든 방송을 장악하고 인터넷을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송장악, 인터넷 통제에 나서고 있다.
이제 방송의 영향력이 신문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사실을 ‘자각’한 조선일보가 ‘시사기획 쌈’의 촛불집회 방송에 ‘조선중앙TV’ 운운하며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2008년 촛불집회와 1987년 6월 항쟁은 절대 같지 않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적어도 조선일보와는 논쟁할 필요가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촛불집회와 6월 항쟁을 연결시켰다는 이유만으로 ‘북한방송이냐’고 따지는 신문과 무슨 논쟁을 하겠는가?
다만 조선일보가 ‘쇠고기 촛불집회’와 비교조차 하지 말라는 ‘반독재 민주화운동 6월 항쟁’에 대해 87년 당시 조선일보는 어떻게 보도했는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정상이다.

조선일보는 ‘시사기획 쌈’이 촛불집회를 다루면서 6월 항쟁을 언급한 것에 대해 “KBS는 시청자들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선동에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KBS 보다는 조선일보에게 더 어울리는 충고로 보인다.
백번 양보해 ‘시사기획 쌈’이 촛불집회와 6월 항쟁을 연결시킨 점이 비약이라 해도, 그것을 두고 KBS를 “조선중앙TV 서울출장소냐”고 비난하는 것이 정당한 비판인가? 조선일보의 이런 주장이야말로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이다.

아울러 조선일보는 ‘시사기획 쌈’을 찬찬히, 편견을 버리고 다시 한번 보기 바란다. 조선일보는 ‘시사기획 쌈’이 “국민을 거리로 나가라”고 선동했다지만 우리가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시사기획 쌈’은 촛불집회와 민주주의를 놓고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몇 가지 고민거리를 진지하게 제기했다. 그 고민이 읽히지 않는다면 조선일보는 시대를 이끌어갈 수 없는 신문일 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쫓아갈 수도 없는 신문이 된 것이다.
조선일보는 KBS를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를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2008년 7월 5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